[말돌시] 명월, 하나
[하루 한바닥 프로젝트_소설v.01]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명월, 하나
달 밝은 밤이면 언제나 떠오르는 말이 있다. 멍은 달의 그림자라던 너의 그 말.
이름에 달 월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네? 좋겠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너의 첫마디였다. 달 밝은 밤이면 너 같은 밤이야. 하며 장난스럽게 웃던 너에게 깊은 바다를 볼 때마다 너 같은 바다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끝내 말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너랑 바다를 보던 때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으므로. 너 같은 바다야. 라는 말은 내가 가진 말 중에 가장 예쁜 말이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최대한 천천히 꺼내 보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꺼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린 아이의 보드라운 손끝에도 곧 잘 베어 날카롭게 손톱을 기르던 사람. 그렇게 기른 손톱으로 누군가 내밀어준 손에 여러 각도의 자상을 입히던 그런 사람이었다. 너는 겁도 없이 내 손을 잡았고, 이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네 손을 보다 고개를 들어 본 네 얼굴은 또한 피투성이었다. 내 손톱도 안 물어뜯는데, 라고 하며 길게 자란 내 손톱을 이로 뜯는 너의 모습은 처음에는 나에게 공포영화 같은 것이었지만 이내 일일 드라마 같은 것이 되었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라는 태도를 취했지만, 속으로는 네가 영원히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엉엉 울었다.
너는 상처에 중독된 사람 같아. 마조히스트라는 말 알아? 여전히 내 손을 잡은 채 네가 말했다. 나는 손을 더 꽉 쥐었다. 이내 내 손톱이 너의 손을 짓이겨 버릴 거라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손을 뿌리쳤다. 내려다 본 너의 손은 말끔했고, 나의 손톱은 울퉁불퉁하고 짧았다. 이제 상처 주는 건 고사하고 동전 하나도 못 줍게 돼서 어떡해? 라고 네가 말했던 것 같다. 아무렴 동전 줍는 게 대수일까. 나는 처음으로 네 손을 먼저 잡았다. 그러자 네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전 연애 얘기는 그만 하겠다는 거지?
네가 없으니까 자꾸만 나는 다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벌써 손톱이 많이 자란 것 같기도 하다. 멍은 달의 그림자라던 너의 말. 달 밝은 밤에 나의 어깨에 기대어 참은 숨을 뱉듯 말한 그 말. 왜? 라고 묻는 내 말에 넌 나중에, 라고 말했지만 나에겐 그 말이 안 돼. 라고 들렸다. 나는 잠시 말의 맥락을 읽다가 달의 그림자는 멍이라는,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아서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을 후회한다. 그 말은 네 곁에서 이해했어야 되었던 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