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nny Sea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쓰느라 하루치 모닝 페이지를 열일곱 쪽을 썼다. 며칠 동안 못 쓰고 쟁여 두었다가 범람하기 직전의 봇물에 물꼬를 트는 날이면 펜에 가속도가 무섭게 붙는다. 달리는 생각의 속도에 맞추고자 펜이 지면 위를 미친 듯 달릴 때면 정리되지 않은 마음속 언어들이 쏟아져 나와 쌓인다. 춤추던 펜이 출근 시간이나 급한 일 때문에 억지로 멈출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간단한 경험과 그 때 느낀 감정을 매일 한쪽씩만이라도 기록해 놓을 걸 하는 후회가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억 속에만 저장해두었다가 나중에 꺼낼라치면 이미 정제되고 변질하여 빛바랜 앨범처럼 보이니 말이다.
작년 하반기에 『아티스트 웨이』가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12주 동안 매일 모닝 페이지 세 쪽 쓰기와 주 1회 이상 아티스트 데이트하기라는 미션을 수행하도록 기획되어 있다.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자신 안의 예술성 호흡과 성장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모닝 페이지를 꼽고 있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야 예술적 혼이 마음껏 발휘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억압된 쓴 뿌리들이 분출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 분출 통로로 모닝 페이지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12주 동안 책을 읽으며 내용을 실천하고 주 1회 만나서 나누는 교사성장학교인 고래학교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이 책을 다루면서 모닝 페이지를 처음 쓰기 시작했다. 잘 참여하다가 후반에는 저녁에 여러 가지 일돠 모임이 뒤엉켜 끝까지 참여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중간중간 작성해 왔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올해 초부터 뉴 아티 작가 모임에 합류하면서 다시 이어갔다.
안타깝게도 3개월 동안 매일 꾸준하게 쓰면서 미션을 제대로 마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나 역시 여러 가지 핑계로 굶다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서서 허겁지겁 먹는 밥처럼 한꺼번에 몰아서 쓸 때가 많다. 다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지속해왔고 이제서야 1회 독을 마치고 2회독에 들어간다. 볼펜으로 직접 종이 노트에 쓰고 있는데 노트로는 세 권 째다.
모닝 페이지를 쓰기 이전과 지금의 나는 사뭇 다르다. 평소에는 초긍정의 아이콘으로 늘 해바라기 같은 얼굴을 하지만 모닝 페이지 속의 나는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분노의 감정 표현까지도 서슴없이 하는 매우 솔직한 수다쟁이다. 최근 들어 그럴만한 일들이 발생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서운한 감정, 화난 마음, 불의에 대해 분노하고 고발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이 들끓는 마음을 한 단계 걸러내는 거름 장치로 모닝 페이지가 쓰인다. 나중에 그 쏟아냈던 것들을 다시 하나씩 보듬어 씻고 의미를 부여하며 옷을 입혀서 세상에 내놓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하는 것 같다.
모닝 페이지는 마음을 쓸어 담는 감정 쓰레기통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감정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이전 같으면 혼자 처리하고 구석 저 쪽에 던져 놓았을 법한 쓰레기들을 다시 주워 와서 담기도 한다. 작년 후반기부터 올해 계속 저는 어떤 일 때문에 계속 고민하며 씨름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나의 글에는 이런 고민과 함께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가 잔뜩 들어 있다. 훗날 이 글들은 개인의 역사 뿐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모닝 페이지를 알게 된 것은 내게 큰 행운이다. 만난 지 1년도 안되었지만 가장 속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평생 친구이다. 사실 속마음을 나누는 오랜 친구에게도 하기 힘 든 말이 있다. 이 때 모닝 페이지가 그런 친구가 되어준다. 혹시 이런 친구가 필요하신 분은 <아티스트 웨이>를 읽어보기 바란다. 나도 앞으로 가끔 나의 모닝페이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