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현실적, 물질적 제약에 매여 있는 우리에게는 부자유가 주어졌다. 지옥이 있으므로 천국이란 단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슬픔이 있으므로 기쁨이란 단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삶이 짧으므로 오래오래 기억될 아름다움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자유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이 부자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든 우리 안에 파괴될 수 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 그러나 사적으로는 자아에 엄청나게 집중하면서도 공적으로는 위축되고 소심해져,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초긴장 신경증적 지옥을 사는 우리가 내적으로 소중한 무언가를 버리기는 얼마나 쉽던가. 이 와중에도 자신의 무언가를 꿋꿋하게 지키고 사는 인간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품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정혜윤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 -
이 글에 밑줄을 긋고 싶어서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살아가면서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육체적 발은 사방을 돌아다니면서도 그곳에 늘 따라다니는 정신은 '품위'라는 두 글자에 생각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면 또는 결혼 후에 아이 없이 남편과 둘만 살고 있다면 느끼지 못했을 많은 것들에 대한 깨달음의 응축된 무엇이기도 하다. 아 또 있구나. 마흔셋, 지금까지 스쳤던 수많은 관계에 대한 나름의 갈무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로서 비롯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애에서 사람의 시간은 순간일 뿐이고, 사람의 본질은 그칠 새 없는 흐름이고, 사람의 감각은 흐릿한 불빛이고, 사람의 육체는 벌레의 먹이고, 사람의 영혼은 떠들썩한 소용돌이이고, 사람의 운명은 불분명하고, 사람의 명성은 불확실하다. 요약해서 말하면 육체에 속하는 모든 것은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고, 영혼에 속하는 모든 것은 꿈과 수증기와 같은 것이다. 생활은 전투이며 이국땅에서 잠시 머무는 것이다. 명성 다음에는 망각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그의 걸음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능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단 한가지 일에 그리고 오직 하나, 그것은 철학이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성스러운 영혼을 더럽혀지지 않고 상처 입히지 않은 채로 보존하는 것이다.
-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 -
아침 일찍 일어나면 <명상록>을 소리내서 읽고 있다. 어떤 구절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구절이 나오면 한번씩 더 읽어본다. 책을 읽을 때 두어권씩 번갈아 가면서 읽는데 그 맥락이 통할 때가 있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서 얻은 '품위'와 <명상록>에서 얻은 '철학'이란 말이 내게는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됐다. 정혜윤 작가가 말하는 부자유의 공간과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형체를 남기지 않는 육체와 정신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의 생활은 자유와 철학이 필요하고 삶을 살아가고 지켜내기 위한 '품위'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해석됐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나만의 철학 그리고 품위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우선 가족 친구 그리고 수많은 관계와 연결되지 않는 나만의 유니크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에 망설이지 말자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타인에게서 얻은 부자유 때문에 지칠 수 있으나 내 안에 잠재된 에너지로 충만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겨낼 수 있는 스터프일 뿐 나로써 비롯된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임에 분명하다. 결국 혼자 남게 되는 인생의 게임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에 진심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추가하자. 행동에 대한 '왜'에 대해 분명한 자기 근거를 가질 수 있길 바란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대상인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육아가 끝나는 날까지 고민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길 바란다. 실수를 합리화 시키는 횟수를 줄이고 분명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식과 부모의 관계가 후회스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톡 적당한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지나치지 않도록 말이다. 무엇보다 존재에 대한 긍정과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아이여서 감사하고 나는 또 그들의 엄마로서 충분하길 바란다.
‘지금 무슨 생각해?' '너는 어떻게 살길 바래?' '뭐가 가장 걱정이야?' '뭐 계획하는 거 있어?' 등의 질문에 지금 바로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면 어떨까? 그건 지금까지의 나에 대한 이야기와 지금 현재의 내 모습과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상상 없이는 절대 쉽게 대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라고 답하기에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너무 성의 없게 느껴진다. 그냥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를 분명하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건 그 분명한 걸 지키고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좌절할 수도 있고 휘둘릴 수도 있고 또 놔버릴 수도 있는 인생 길을 당당히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삶을 살릴 것이라 믿는다. 또한 그걸 찾는 것이 삶의 궁극이기도 한 것이다.
나의 품위는, 나의 철학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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