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번도 그 자리였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가 생장을 마다하는 이유는 땅속의 뿌리 때문이다. 작은 잎에서 만들어 낸 소량의 영양분을 자라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쓴다.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 뿌리에 온 힘을 쏟는 어린 시절을 '유형기'라고 한다.
나무는 유형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따뜻한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나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그렇게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트고 자리를 잡는 동안 실타래처럼 가는 뿌리는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웬만한 가뭄은 너끈히 이겨낼 근성을 갖춘다. 유형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우종영,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중 -
우리는 가끔 '그 때'를 앞당기는 일에 골몰하여 지금 당장 가능하지 않은 일에 온 힘을 다해 매진할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린다는 건 아무런 행동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과정을 노력으로 채울 것이다. 어쩌면 매우 혹독한 겨울을 보낼 수도 있겠다. 반면 누군가는 생각보다 수월한 시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리고 지금 자신의 능력에 따라 과정을 통과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다를 뿐 변화의 결실을 맺기 위해 어떤 행동이든 할 것임에 틀림없다.
개인의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움직이는 일은 몇 곱절 큰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는 누구의 에너지를 말하는 걸까. 나의 에너지가 타인의 행동을 일으키고 변화시키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나. 누군가를 향한 진심어린 조언과 충고는 그 내용의 훌륭함과 상관없이 듣는 즉시 버려질 위험에 처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매우 높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것 같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아이들 교육에 부모가 관여하는 것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될 것 같은데...
취학 전 다른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내 아이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늦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이 아닌 내 아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쿨하지 못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불안은 취학 후 더 커졌는데 남들은 어떻게 교육하는지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나와 아이가 하고 있는 루틴한 일과들을 성실히 해나가면서도 가끔 접하는 주변 이야기들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가끔은 아이에게 티를 내면서 말이다.
요즘 느끼는 게 있다. 우리는 한 번도 그 자리였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늦지. 진도가 늦다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리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가끔 그것이 퇴보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까마귀 고기를 구워 먹은 것처럼 말이다... 화를 내도 대화를 했다. 짜증이 나면 가라앉히고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 방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가끔 아이는 내게 성질을 냈다.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다. 또 가끔은 그 성질을 내 성질로 맞받아쳤다. 그래도 꾸준히 했다. 조율해 가면서... 농담을 해도 그 안에 진심을 알아차린다. 핵심을 이야기 하면서도 농담처럼 간드러지게 다가갈 수 있다. 성질 내면서 씩씩 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려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못하지만 그래도 해보자 하면 따라와 주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앞서갔던 것이지 아이의 지금 모습만 놓고 보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다.
나무 의사 우종영 작가의 말처럼 뿌리가 단단해야 더위에도 추위에도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율, 엄마가 어제 참 좋은 글을 읽었는데 말야. 나무는 싹을 틔우고 키를 키우기 보다 뿌리내리는 데 집중한대. 그 시기를 유형기라고 하는데 뿌리를 튼튼히 내려야 더 잘 클 수 있다는 거야. 우리 사람도 같아." 하고 말하니 "나처럼?" 하고 질문이 돌아온다. "맞아. 너처럼." 엄마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는 진심을 전했다. 이런 대화는 자주 있다. 생각하는 걸 말해야 하는 본성을 타고난 엄마는 어려운 내용이라도 아이와 공유하려 애쓴다. 그런 엄마의 본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이는 어려운 말은 해석해 주고 꼬인 말은 풀어준다. 녀석.
엄마가 그린 호랑이를 보고 아들도 자기 방으로 뛰어가 호랑이를 그렸다. 네가 뿌리내리는 동안 엄마가 좀만 기다려 줬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그린 호랑이를 보면서 어쩌면 이 아이는 엄마를 닮아가고 있을 수도 ... 내가 조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가 뿌리를 잘 내를 수 있도록 말이다. 어흥. 내 새끼.
자연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하던가? 자연의 모든 것은 헛된 노력이나 그릇된 어림짐작 없이 정확하게 평가받는다. 모든 생명체는 고유한 양과 질, 본성과 힘에 따라 행동하며, 따라서 평화롭다. 오직 인간만이 가식과 불만 속에서 살아간다. 스스로 정직하게 판단하고 자신 안에 머무는 것에는 얼마나 큰 지혜와 덕목이 있는가! 당신에게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당신의 과업은 운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다. -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공부하는 삶> 중 -
#엄마의역할에대해생각하고
#기다린다는것의의미를다시되새기고
#우리는늘서로에게진심임을감사하게생각하며
#운명을강요하지않기로
#나의역할을기꺼이해낼수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