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는 가끔 어린이집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 누구랑 못 놀았어. 나랑 안 논대."라고 마치 하루가 재미없었다는 듯 말한다. "그럼 오늘은 친구들이랑 놀지 못한거야?" 하고 물으면 "아니, 누구랑 뭐하고 놀았어."라고 대답한다. 더군다나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곤 다음날에 어린이집에 가서 자기와 놀아주지 않은 친구와 재미있게 놀 거라며 집을 나선다. 나라면 나랑 놀아주지 않은 친구에게 빈정이 상해서 함께 놀 일을 상상하며 행복해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발 사이즈가 맞지 않아 당장 신지 못하고 발이 조금 더 크면 신을 수 있다며 아이에게 말했던 그 신발을 드디어 신발장에서 꺼내 신었다. 드디어 이 신발을 신게 됐다며 더 없이 행복해 하는 꼬맹이다. 겨울왕국의 엘사를 한창 좋아하고 있는 지금이다. 엘사는 그려있지 않지만 반짝반짝한 게 엘사 신발 같다며 좋아한다. "엄마, 이거 엘사 신발 맞지? 누구는 엘사를 엄청 좋아하는데 나도 좋아. 그 친구한테 이거 엘사 신발이라고 말할래. 그 친구도 엘사 신발 있거든."라고 어린이집 등원 중에 말한다. 그리고는 "그때, 오빠 옷 사는 데 그곳 있잖아 엄마. 거기서 나 엘사 신발 꼬옥 사줘야해. 나 정말 좋아한다고." 하며 말을 이어간다. 쇼핑 센터에서 신발이 무거울 것 같아 매장만 빙빙 돌다가 그냥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이번에는 꼭 사보자."하고 대답을 해줬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기억을 잊고 친구와 새로운 놀이를 상상하며 등원하는 꼬맹이는 정말 잊은 걸까. 아니면 재미있었던 기억을 떠올려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며 행복한 걸까. 순수한 긍정을 생각하게 된다. 실패, 좌절, 좋지 않았던 감정을 망각하고 즐거운 것 행복한 것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무장이라도 하듯 그렇게 아이들은 유희성을 회복하는 걸까.
아들은 손바닥 크기보다 아주 조금 더 작은 사이즈의 블록을 가지고 논다. 블록은 하드한 소재이고 곡선을 표현할 수도 없는 직각 모형을 만드는 데 유용한 모양을 갖고 있다. 이 블록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 초기에 아들은 힘들어했다. 소근육 발달이 늦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이 문제였고 무엇을 만들지 몰라하는 부분에서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크기와 모양 그리고 그 쓰임을 바꿔가며 아이는 전 단계의 실패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과정에는 실패도 있었지만 더 큰 즐거움이 있었다. '유희가 있는 곳에 예술, 창작이 없을 수 없다'는 교수님의 말이 떠오른다.
너는 예술을 해야해. 너는 멋진 걸 만들어야 해. 너는 멋진 그림을 그려야 해. 아이의 상상력을 만들고 아이의 미래를 끌고가려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좋아해 주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선물하고 그 쾌감을 기억해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느 때는 멋지게 만든 십자블록 작품을 수직 낙하시켜 부서지는 과정을 슬로 모션으로 찍고 있는 거다. 멋지게 만든 것을 부수려 하지 않았던 예전 모습과는 다르게 언제든 뚝딱 만들 수 있으니 부서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극복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가 찍은 영상을 보는데 실제로 부서질 때의 쾌감은 만들 때의 것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매 순간 축제일 수는 없지만 매일을 축제처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걱정 없을 것 같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에 사로잡혀 시작을 두려워하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도 아이의 유희성을 회복할 수 있을 때 매일을 축제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학기에는 경직된 사고를 깰 수 있게 도와주는 수업을 다수 들었다. 움켜잡고 있던 수많은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필요에 따라서는 지워버릴 수 있어야 새로운 변화를 향해 도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망각이라는 것이고 실패의 기억 우울의 기억 불안의 기억 불행의 기억 이 모든 부정적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기억들에서 순수한 긍정의 기억을 품고 나머지는 망각하는 행사, 축제를 의도적으로라도 만들어 봐야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미국 네바다주 블렉록 사막에서는 매년 버닝맨(burning man)이란 축제가 열리는데 약 1주일 간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일시적 장소에서 기존 삶으로부터 일탈을 꿈꾸고 아이들의 유희성을 회복하며 축제를 만들어 간다. 돈, 전기, 인터넷 등 우리의 일상에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을 사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성품을 사용할 수 없는 이곳에서 창작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리고 축제의 마지막날, 모든 창작물들을 불태운다. 버닝맨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축제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제의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는 꼬맹이에게서, 매일 새로운 걸 만들고 부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아들에게서, 나는 오늘을 어떻게 축제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또한, 아이들의 축제가 오래 지속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매일을축제처럼살아가고싶다
#어제의기억에사로잡히고싶지않다
#순수한긍정을안고내일의변화를향해하고싶다
#오늘의실수를빨리잊어야새로워질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