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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Dec 10. 2021

오늘을 긍정으로 살아가는 힘, 글 그리고 그림...

시원한 그늘을 찾아 들어갔다. 자전거를 타며 바람으로 마사지 하듯 살결에 닿는 상쾌한 공기도 좋았고 밟을수록 그 탄력에 앞으로 쭉쭉 미끄러져 나가는 속도감도 짜릿했다. 집에서 올림픽공원까지 자전거로는 15분 정도 걸리는 듯했다. 꼬맹이를 뒤에 태우고 아들을 앞세워 열심히 패달을 밟다보니 등에는 수줍은 듯 송글송글 땀이 올라왔고 얼굴은 빨갛게 열이 올라 팽창해 있었다. 공원 놀이터는 폐쇄 되어 있었다. 유난히 공원 놀이터를 좋아하는 꼬맹이는 실망한 눈치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 중 하나가 맛도 못보고 사라져 버린 것일 테니 그 기분도 알만했다.


공원 정문 쪽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힘들어 멈춘 그늘에서도 사람들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마스크를 올려야만 하는 지금 상황에 한숨을 몰아쉬고는 넓은 공원 어딘가에 마스크 없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꼬맹이를 어린이집에 태우고 다닐 목적으로 자전거를 구입했고 바로 유아안장을 올렸다. 하중이 뒤로 쏠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꼬맹이의 체중은 늘었고 남문에서 중앙광장으로 가는 비탈길은 기어가 있어도 벅찬 숨을 뱉어야 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 후 만나는 내리막길은 쉬어가는 코스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그 와중에 찾은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많은 올림픽공원은 나무 그늘의 면적이 넓고 깊다. 공원 중앙광장 옆에 있는 넓은 잔디밭 근처에 자리를 잡고 모든 물리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며 몸에 붙어있던 거추장스런 것들도 내려 놓았다.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무런 흔적도 없는 깨끗한 자연 도화지가 펼쳐져 있었다. 개미며 거미며 이름을 알 수 없는 곤충들이 가끔 나타나 오브제 역할을 해주었다. 무얼 계획하지 않아도 자연에서 놀 줄 아는 아이들은 주변을 관찰하고 재미를 찾아내 시간을 보낼 줄 안다. 그러는 사이에 엄마는 멍때리기와 생각하기를 반복하다 멀리 보이는 그늘에 아빠가 앉아 계시는 풍경을 상상했다.


문득 낙엽이 곱다며 서울 사는 딸에게 생강나무 단풍잎을 보내신 글동무의 아버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질투도 났다. 이런 게 부러운 거겠지. 누가 좋은 차를 타고 고급 빌라에 살고 값비싼 보석을 몸에 두른다고 한들 그것이 부러워 내 기억을 일으킨 적은 없다. 기억 할 수는 있어도 부러워 가슴 울렁이게 한 적은 없다. 남의 차고 남의 집이고 남의 보석이니까 그렇다. 그런데 '아빠가 보낸 생강나무 단풍잎'은 나의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바람이 들어와 쓰레질을 하듯 구석구석을 건드린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깊은 그늘을 핸드폰으로 찍어 만지작거리기를 여러번.




+++++++

아빠

가을이다


여전히 일하느라 바쁘겠지만

시원한 나무그늘 깊은 곳 찾아가

잠시 쉬며 일해요


사랑해요

+++++++


저녁이 되어서야 아빠에게서 답장이 왔다.


+++++++

고맙다

사랑한다

++++++++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감동이 밀려왔다. 아빠도 그랬을까. 요즘 인간 삶의 유한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나를 대신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의 것들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늙기 시작하는 이 여지없는 삶의 프로세스가 꼭 부정적이지도 않은 게 긍정을 통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여정에 글을 짓는 일과 그림을 그리는 일이 함께 일어난다면 어떤 시너지를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적어도 긍정을 생각하는 삶 정도는 나 스스로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은 누군가에게 전이되는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빠에게 보낸 문자며 마음은 결국 내게로 다시 돌아와 기억을 만들어냈다. 언제고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이지만 아빠에게 '사랑해요' 마음을 보낼 수 있었던 이 공간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빠도 밭 둔턱에 있는 어느 그늘에 몸을 들이면서 서울에 사는 딸이 보낸 이 나무그늘 사진과 메시지를 기억하겠지. 글이 말보다 더 따뜻한 이유는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휘발되지 않고 생각이 흔적을 만들고 그 흔적은 다시 기억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말은 즉흥성을 갖지만 글은 순간 떠오를 수 있는 것을 생각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그 메시지의 깊이도 다른 것이다.


위대한 일은 거창하지 않다. 나에게 있어 위대한 일은 익숙한 것 밖으로 한발짝 나가는 것이며 습관적인 사고에 아주 작은 크렉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내면을 산책하고 영롱한 무엇가를 발견하는 일, 글과 그림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은 꽤 일치한다. 아이들의 칭얼거림으로 다시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무척 설레고 뭉클했다. 뭔가 위대한 변화를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글과그림에대한생각

#아빠에게보낸메시지

#사랑해요

#사랑한다

#삶의위대한변화는작은변화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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