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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Sep 06. 2022

결국, 난 엄마니까

또 한번 믿어보는 거다. 

어제 새벽부터 비슷한 속도와 굵기로 떨어지는 비가 지리하고 귀찮게 느껴지는 이유를 찾았다. 바람이라도 불어서 와장창 우당탕 큰 소란이라도 일으키면 대응이라도 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두 발을 꼭 묶어 놓고는 자기 할일만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내 모습이 딱 그짝이라 태풍이란 놈이 뒤에 숨어서 내 숨을 농간질 하는 것에 기분이 나빴던 게 아닌가.


즐겨보자, 그래 즐기면 되는 거잖아, 그럴 수 있어. 우리 삶이 어디 그렇게 살아지는가. 타이르고 달래가며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이 어디 내것일 수 있을까. 바람 구멍이 생겨 불어 넣는 족족 어디론가 사라지는 재미없고 힘빠지는 풍선 불기는 다음 풍선을 불 힘조차 빠지게 만드는 게 아닌가 말이다. 지금 내가 그러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게 입을 닦아 내지만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들어 앉으니 더욱 지금이 귀찮고 뭘 해도 성과 없는 인형뽑기처럼 내 시간과 돈만 쳐들이는 것 같아 씁쓸하게 입만 닦고 있는 기분이겠지.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반성의 연속이고 반복되는 감정 싸움에 휘말리는 기분이랄까. 아빠의 턱 바로 밑까지 커버린 아들은 무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첫째 아이에게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짜증과 불안을 안겨주는 꼬맹이는 덩치로는 초등 1학년 뺨치고 매일 반복되는 투정과 헷갈리는 감정의 변화는 엄마의 목구멍을 확장시킨다. 지금 내리고 있는 이 비처럼 계속되고 있다.


결국 이 비는 그칠 텐데. 아슬아슬한 위기를 이겨내는 힘은 엄마의 지혜롭고 단단한 육아 철학으로 비로소 생겨나는 건지. 아이들이 빠른 속도로 커가는 것에 비해 난 느리게 대응하며 오히려 전진보다 후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엄마의 발빠른 정보력과 추진력으로 아이들의 학업 성적이며 진로 탐색에 그린라이트가 켜지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난 턱없이 느린 게 아닌가. 섬세하지 못한 성격 탓에 딸의 감성을 만져주지 못하는 게 아닌가. 결국 불안은 내 안에서 시작되는데 마치 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는 애매한 연결고리를 찾고 있었다.


참. 어제 사군자 수업에 갔다가 오후 타임에 수강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도서관에서 10여년 넘게 한 선생님께 그림을 배우신 것 같았다. 선생님은 연로하셔서 강단을 떠나셨고 그 자리에 새로 오신 선생님의 교수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만을 이야기하셨다. 사군자를 처음 배우고 있는 나로서는 참 좋은 선생님인데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안타까운 것은 생각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지금 선생님의 장점을 볼 수 없다는 거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순탄하게 자라준 아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성장과 변화의 반복으로 만들어지는 자연스런 잡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성별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개성이 뚜렷한 딸아이를 오빠를 키웠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내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늘 지금을 살려고 했던 마음가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마음챙김이 필요하다. 분노를 분노로 인정하고 안아주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 아이와 대화로 풀어나가려 노력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자. 아직은 육아에 집중할 때라는 것도 잊지 말자. 그 집중에 편견과 아집이 자리잡지 않도록 주의하자. 아이들의 행동에 주인이 되지 말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의견 정도는 나눌 수 있게 아이들의 시선과 생각을 가장 먼저 고려해보자. 당위성 보다는 열려있는 가능성을 마음에 두자.


글을 쓰면 차분해 지고 지금의 문제점을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다짐이며 다시 잘 해보고 싶다는 긍정적 신호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아이들 돌보는 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도 즐겁게 해낼 날이 오겠지. 또 한번 믿어보는 거다.






#엄마의다짐

#엄마의기록

#마음챙김이필요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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