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이또이 Dec 22. 2021

느낌표를 찾아서....

회화과 편입을 하면서 수채화가 아닌 유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럴듯했다. 밑그림이 있다고 해도 그리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지울 수 있고 한번의 물번짐으로 생이 결정되는 수채화 보다는 마음편히 그릴 수 있다는 장점에 무조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제 원격수업을 들어야 하는 아들은 집에 두고 꼬맹이와 함께 버스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화방에 갔었다. 유화로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 있는데 캔버스를 사기 위해서였다. 공모전에 낼 작품을 할 요량으로 화방을 찾았었는데 확실히 인터넷에서 싸게 주문한 캔버스와는 달랐다. 팽팽하게 잡아주는 탄력이 좋았고 무엇보다 프레임에 사용되는 나무가 견고했다.


결론적으로 한 개의 캔버스를 사러 갔다가 다양한 크기로 세 개를 사서 집으로 왔다. 8호, 10호, 15호 각 사이즈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캔버스에 그릴 그림을 상상해봤다. 다음 달이면 캔버스 가격이 30% 오른다는 말씀을 듣고 두 개를 추가 구입했지만 자신감이 지금보다 더 있었다면 열 개고 스무 개고 더 욕심을 냈을 것이다. 시간이 문제지 어떤 캔버스든 채울 수 있는 자신감만 있다면 캔버스 100개가 문제인가 말이다.


지금 좁디 좁은 내 방에는 완성되지 않은 유화 캔버스가 네 개, 아직 밑그림 없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빈 캔버스가 세 개가로 빼곡하다. 유화를 시작하면서 걱정되었던 부분이 기다리는 작업이었다. 물로 그리는 수채화는 작품의 진행 속도 면에서는 나의 성격과 맞는다 생각했다. 수채화도 작품 나름이겠지만 수채화 용지에 빨리 스며들고 빨리 마르는 물성만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속도는 아직 그 물성의 특징을 급하게 따라가는 수준이기에 수채화 작업을 할 때는 조급해진다.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 조급함은 조금은 내려 놓을 수 있게 됐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보면서 생각들이 끝도없이 이어진다.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더 그려야 할 부분은 없는지 관찰하게 된다.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이렇게 온화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발전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잠시 놓아두고 다시 빈 캔버스에 젯소칠을 하고 있는 나는 무슨 생각인지 새롭게 그려낼 그림에 정신이 팔려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재미있다. 나의 마음이 생각이 손이 여러 캔버스를 오가며 한 곳에 머물지 않는 게 마치 스테이지를 옮겨가며 춤추는 것처럼 흥분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모든 재료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믿었다. 유화 작가는 수채화도 잘하고 아크릴 물감도 훌륭히 다룰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수채화, 오일파스텔, 소프트파스텔, 아크릴, 유화 등 다양하게 경험하고 있지만 이중 나에게 꼭 맞는 친구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회 생활을 할 때 아주 오랫동안 자기소개서 타이틀은 '디자인에 능하고 마케팅 기획력까지 있는 서비스 기획자'였다. 포토샵을 사랑해 웹디자인은 나의 장기였으며 온라인 마케터로 일을 하면서 그 능력은 분명 플러스였다. 그런데 그런 잡다한 지식은 디자인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디자이너와 일할 때 잡음을 만들었다. 프로모션 또는 서비스 기획을 할 때 완성된 디자인까지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며 업무를 진행하는 나의 스타일은 디자이너를 힘들게 했다. 그때의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영역까지 침범한 꼴이 된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경험하고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이제야 조금씩 나의 영역을 굳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힘들게 했던 디자이너의 고집스런 부분 때문에 고생했다 생각하지만 반대로 그 디자이너는 죽을맛이었을 것 같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잡스럽게 업무 영역을 오갔던 내가 전문가 영역을 지키고자 했던 디자이너의 마음을 어찌 알았겠나. 만만히 봐서 미안하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좋아하고 잘하고 많이 노력하고. 시간까지 더해지면 나도 내것을 지킬 수 있는 자존이 생길 수 있겠지. 난 이런 부분에 특별한 소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고 말이다. 이 느낌표를 찾아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그런데 즐겁다. 수많은 질문을 통해 얻어지는 느낌표라니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쨍하니 맑은 하늘을 보여주는 오늘도 무덥겠다. 그치만 붓을 들 수 있는 오늘 참 좋은 하루일 거라 확신한다.







#느낌표를찾아떠나는오늘의여행시작

이전 10화 나는 꼬맹이 덕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