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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Feb 25. 2022

아들을 보면서 나의 태도를 반성하게 되고...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알고 지내던 관계를 거의 모두 정리했었다. 특히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들의 부모 연락처를 거의 삭제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피곤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처럼 지내던 동생과도 틀어졌고 명확한 이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멀어졌다. 관계 때문에 하루에도 수도 없이 상념들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으니까. 그로 인해 생활에 큰 타격을 받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고 나도 아이와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보살펴가며 괜찮다 괜찮다 주문을 걸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아들과 친하게 지냈던 아이의 엄마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아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이 같아서 가끔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연락처는 이미 삭제된 후의 일이었다. 관계에 대한 염증은 연관성 없는 이들에게까지 치달았고 그중 이 엄마의 연락처도 지울 수밖에 없었다. 둘째를 낳고 벌써 8개월이 지났단다. 아이 낳으면 연락 달라며 건넨 말을 기억하고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반가웠다. 첫째 아이들의 만남과 아울러 우리도 얼굴을 보자고 했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어제 도서관 뒤에 있는 작은 숲공원을 통해 아들과 집으로 돌아왔었다. 숲길을 걷는 중에도 몇 번이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에 대해 묻곤 했는데 그 정도가 심해 '이제 그만 물어봐' 하고는 걷기에 집중했던 것 같다. 날이 푸근하니 뭐라도 올 것처럼 잔뜩 흐린 날씨가 산책하기에는 참 좋다 여겨지기도 했다. 매화가 가득 핀 산골에 사는 선비가 친구를 기다리는 풍경을 은근하게 그려낸 조선 후기 화가 전기의 '매화서옥도'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최근 눈 내리는 풍경의 사진을 하나 그리다가 매화서옥도와 비슷한 느낌의 그림을 연출해 보기로 했다. 첩첩산중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를 만나러 산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떠올렸다.


친구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아들의 모습이 은근히 저들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먹했지만 너무 좋았다는 말을 전하는 아들에게 친구는 그저 참 좋은 사람이구나. 나도 그랬는데... 아쉬움이 남지만 연연하지 않기로 했으니 그냥 추억이 됐다. 2년을 못 봤지만 아이들은 어제 만난 친구처럼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 또한 오랜만에 그동안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며 새로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며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1월 17일 아들의 일기



아들과 어제 산책 중에 나눈 이야기인데, 하루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었다. 질문을 받았을 때 아이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한번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일기에 그 답변을 썼는데 궁금해서 안 볼 수가 없었다. 혹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을까 싶어 펼쳤는데 감사한 문구들이 일렁거렸다. "오전에는 맛있는 밥을 먹고 낮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학원에 갔다오고 밤에는 책을 보고. 화려하고 멋있는 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된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장난감을 살까. 놀이동산을 갈까. 너무 먹고 싶었던 것들을 시켜서 먹을까. 충분히 추측 가능한 답변들과는 달리 아들은 평상시와 같은 하루를 살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평소처럼 대하고 또 일상으로 돌아오는 아이를 난 그동안 특별하게만 키우려고 전전긍긍한 것은 아닌지 질문했다. 일상이 소중한 아이에게 행복한 일상을 선물해도 모자랄 텐데 난 그 소중한 순간에 잔소리며 강요며 당부의 말들을 해대며 몰아친 것이 아닐까 곰곰 생각해 봤다.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 자신의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아이. 가끔 부모의 눈에 나서 혼나기도 부지기수인 아이. 그런 아이를 위해 너무 강하기만 한 엄마는 구부릴 줄도 알아야 하고 가끔은 흔들거리며 춤을 출 줄도 알아야 할 텐데. 관계가 엉망이라고 모든 관계를 칼처럼 잘라냈던 융통성 없는 엄마를 빼닮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버드나무가 좋았을까. 대는 곧지만 유연하게 바람을 타는 잔가지가 있어서 너무 부러웠을까. 아이도 그렇게 강함과 유연함을 두루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게 된다. 이제 엄마의 노력만 남은 것 같다...



#아들을보면서

#나의태도를반성하게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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