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이또이 Dec 10. 2021

안티프레질(anti-fragile)

구체적이고 명확한 미래를 보장받고 싶었다. 그 구체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매 순간이 곤욕이었다. 그 과정에는 나도 없었고 내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도 없었다. 그저 통장에 따박따박 찍히는 보장된 월급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간절했다. 그 보장된 미래가.


불안한 심리는 확실한 것을 붙잡고 싶어하는 무의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을 찾게 되고 또 뿌연 안개 속에서는 형체를 만지려 탐색하는 눈이 빠르게 움직이기도 한다. 불투명한 나의 미래에 대한 태도가 그랬고 빨리 성과를 만들어 내는 데 생각을 집중하다보니 몸이 아팠다. 조급증이 생겼다. 무언가 이루고 나서의 다음을 생각지 못했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나의 태도 또한 비슷했다. 하루 하루 살아가지만 우리 아이들이 과연 그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지, 그래도 살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매일 같이 공부, 학습, 진로 탐색에 날을 세우게 됐다. 그런 과정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균열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유타 바우어의 <고함쟁이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고함에 아이는 산산히 부서진다. 얼마전 아이는 '공부할 때 엄마가 소리치면 기분이 이상해져'라고 또렷이 이야기 했다. 그 기분은 멍해지고 하기 싫고 비뚤게 나가고 싶고 그런 것일 테다. 실제 아이의 행동은 그랬고 난 그 때마다 그 위에 더 큰 고함을 올려 놓았다. 산산히 부서진 아이의 모습은 정신이 나간 어미의 눈에도 안쓰러운 아기 펭귄의 모습이었다. 이런 충격에 강해지는 건 아이의 인성도 아니고 태도도 아니고 비뚤어진 삶의 태도일 것이며 부모에 대한 저항이며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력감일 것이다. 반복되는 고함쟁이 엄마의 모습은 더이상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빨리 깨어나야겠다.


아크릴 물감은 수용성이다. 오일을 전혀 섞지 않았다. 물을 섞어서 그 농도를 조절하는 건 수채화 물감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유화 물감은 물을 섞으면 안된다. 그저 페인팅 오일을 섞어 그 농도를 조절한다. 또 다른 점은 아크릴 물감은 빨리 건조되고 유화는 얇게 펴 발라도 삼사일은 기본으로 건조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데 비슷한 점도 있다. 수채화는 한번 붓질을 하면 수정이 거의 불가능한 데 반해 아크릴과 유화는 레이어를 얹는 느낌으로 덧칠함으로써 수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크릴 물감과 유화 물감을 섞을 수도 있겠구나 촛차 페인터는 생각했다. 그런 질문에 돌아온 선생님의 답변은 '그럼 그림에 균열이 생겨요' 였다. 물성이 다른 것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서 섞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었던 거다. 비슷한 점은 있지만 분명하게 다른 아크릴 물감과 유화가 한 판에 그려질 수 없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비슷하다.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엄마.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상처 받을지 다 알고 있을 거라 착각하는 엄마는 늘 아이에게 '파손주의' 딱지를 붙인다. 프레질(fragile). 부서지기 쉽다는 거다. 정은혜 작가의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에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안티프레질> 책을 소개 받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창조적인 것에서 조차 확실한 것을 요구하는 답답함을 해소시켰다 말하고 있다. 깨지기 쉬운 프레질의 반대말인 안티프레질(anti-fragile), '충격이 가해지면 더욱 성장한다'는 뜻이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안티프레질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를 부정하고 극복하면서 자란다는 말을 떠올리게 됐다.


창조적 생명체,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바로 그러한 존재이고 창조적 행위들로 매일을 살아간다. 작은 성공을 맛보며 호기심을 키우고 스스로를 자랑스럽다 생각하게 된다. 그런 훌륭한 상황만 연출 된다면 좋겠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런 경험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그런 안티프레질의 성질은 아이들을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자랄 때 부모님이 하셨던 말씀들이 다 맞지는 않지만 실제 경험을 통해 '아 그 때 말 들을 걸' 하는 부분도 적잖이 있었다. 실제 경험을 하지 않고는 깨달음도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 지루하고 남루한 삶에 고상한 예술이 끼어들 틈이 있을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 불편해 보이는데 괜찮을까? 특별해 보이고 싶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은 거였다. 그게 이렇게 오래 갈지도 내 지금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지 그 때는 몰랐다. 그냥 시작한 길에서 우연을 만나고 그것을 붙잡고 싶어 하는 명확한 걸 좋아하는 나도 안티프레질의 생명의 창조력을 굳게 믿고 싶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쫓는 엄마는 아이에게 명확한 것만 따라가라 말할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말이다.


누구나 예술가로 태어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섞일 수 없는 물성의 부모 자식 관계. 그저 자식의 순수한 물성을 마음껏 표현하며 살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하는 보조자 역할로 남을 수 있도록 이글을 통해 다짐해 본다.





삶의 절반은(탈레브가 말하기를 "더 흥미로운 반은") 안티프레질하다. 안티프레질한 영역에서는 알고 있는 것을 붙잡을 것이 아니라 '모름unknown'의 길로 나서야 한다. '모름'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교육이나 멘토링이나 확실한 답이 아니라, 불안하지만 얼어붙지 않고 배운 바 없는 길을 찾아 나아가게 하는 힘이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창조성이다.


삶의 예술가는 삶을 창조적으로 가꾸는 사람들이고, 일상을 특별하게 하는 행위들로 채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정은혜, <변화를 위한 그림 일기>, 샨티 펴냄 --



#일상을특별하게하는행위

#그나름의노력

#각자의영역에대한존중

#성장은고통을수반한다

#안티프레질의창조성

이전 13화 당신의 삶은 어떤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