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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Dec 10. 2021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미루고 미뤄 왔던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아이 둘을 모두 같은 산부인과에서 낳았다. 산부인과에 가면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로 인한 인구 절벽 현상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임신부가 많게 느껴진다. 스크루지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어느 그곳에서 지난날의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부 구조가 변했고 사람들이 변했고 무엇보다 예전과 지금의 내 마음이 달랐다.


나에게 청춘이 있었나. 그 시절을 지나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나. 갑자기 마흔셋이란 나이는 버겁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겐 나의 나이가 청춘일 텐데. 첫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을 생각지 못했다. 우린 늘 현실에 집중하고 과거는 돌아볼 겨를도 없이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마냥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생명체이니까. 시간을 달리는 열차는 점점 속도가 붙고 차창 밖으로 지나친 풍경은 기억 저편으로 옮겨타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아득하기만하다.


아이를 낳아본 여자의 몸은 그렇지 않은 여인의 몸을 부러워할까.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하중에 눌려 방광 근육은 늘어나고 호르몬의 변화로 없었던 병도 생겨나니 나이 들면서 생기는 병도 있겠지만 아이를 갖고 낳음으로써 개연적으로 발생하는 신체적 변화는 새삼 우울감을 데려온다. 몸 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면서도 몸 관리에는 신경쓰지 않은 내 탓을 해야지 누구 탓을 하겠나. 인생, 어차피 이쪽으로 가겠다 결정해 놓고는 아이를 낳지 않은 여인의 몸을 부러워 하는 마음은 접어야 하는 게 맞다.


생활에 불편을 주는 몸의 변화는 이미 진행중이었고 여러가지 시술을 권한다. 결정은 잠시 미뤘고 시술 없이도 어느 정도의 교정이 가능하다고 하니 운동을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을 잠정 굳혔다. 버스 한 번 갈아타면 될 거리를 걸을 만큼 시원해진 가을 날씨를 핑계삼아 병원에 갈 때도 집으로 돌아올 때도 걸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처방만 받고는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병원에 가기 전 우려했던 몇가지 걱정은 내려 놓을 수 있었던 반면 앞으로 더 나빠질 일 밖에 없다는 의사의 말을 계속 떠올렸다. 한 번의 한숨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계속 터져나오는 한숨은 독이 될 것 같아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이 거리에도 가을 낙옆이 떨어져 운치를 더해주겠지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 정신을 맑게 해줬다.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넓고 커다란 나뭇잎을 들어올리며 맑게 웃어줬던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플라타너스 잎을 집어 들고는 가방에 넣었다. 색도 예쁘고 물감을 은근하게 섞어 준 것마냥 자연스럽게 블렌딩 되어 있었다. 순간 행복한 기운이 몸으로 번지는 듯했다. 조금 더 걸었을까. 병원으로 가는 길에 눈길을 끌었던 아파트 단지 앞 졸졸졸 흐르고 있는 실개천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도심 한가운데 실개천이라니 그것도 수도 없이 많이 왔다갔다 했을 이 거리에 실개천이라니. 걷기를 참 잘했다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봤다. 집에 와서 바로 그려보고 싶을 만큼 좋았다.




그제야 한 숨이 내 몸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는 기분이었다. 숨이 통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일 테니 이 또한 기쁜 일 아닌가. 혼자 걷는 시간이 외롭다 느꼈을 때가 언제일까. 하지만 이제 더이상 혼자 걷는 것에 외로움 따위는 덤벼들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곳에 왜 길이 필요하고 물이 흐르는 풍경을 애써 끼워 넣으려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숨쉴 수 있는 그래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줄 무언가 통로가 필요함이라 생각하게 된다. 내 숨이 어디로 터질지 모르지만 흐르는 그 의식의 흐름 그대로 두면 좋을 무언가 하나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이유와 같다. 실개천에 손을 넣어 담가 봤다. 손가락 사이를 간지르며 지나가는 물을 그저 놔둔다. 기분 좋은 움직임에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다.


부재중 전화 한 통.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온 책읽기에 대한 마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의 관심을 자극시켜 주는 방향으로 흘러 갔고 그중 가장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몇몇 책 중에 작가님의 책은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있을 때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고 책 한권을 다 읽고 난 뒤 작가님께 편지를 써 블로그에 올렸다. 그걸 보시고는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겨주셨었다. 작가님은 자신의 책을 여러권 우편으로 보내주셨고 그렇게 소통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조정육 작가님.


조정육 작가님의 <오늘 하루도 잘 살았습니다> 책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됐고 그림을 통해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작가님에게 집주소를 보내며 언제고 다시 연락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남겨뒀던 문자 메시지에 새로운 글이 등록된 것이다. 놀라웠고 기뻤다. 박사 논물을 나에게 보내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문자를 보고는 단숨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은하씨? 눈물이 났다. 진심을 말하면 여지없이 흐르는 눈물쟁이인 나는 작가님은 모르시겠지만 통화 내내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고 있었다.


책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과 그림이 좋아서 회화과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며 설종보 화백의 호박꽃을 보며 시골에서 호박 농사를 짓고 계시는 모습이 떠올랐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서슴없이 흘러나왔다. 작가님은 뭐든 해보라며 격려해 주셨고 늦게 박사논문을 쓴 사람도 있지 않냐며 내 등을 토닥여주셨다. 뭣도 아닌 내가 책을 내는 것에 아직도 망설여 진다며 말을 건냈는데 책을 쓰고 나서도 생각할 수 있으니 일단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힘이 생겼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 보다는 용기를 먼저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이 나오면 꼭 보내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책을 꼭 써야 하는 이유가 하나 추가 됐다.


뭐든 해봐야 할 때. 실패 보다는 경험을 중시하고 그것을 값지게 만들어야 할 중요한 시기. 몸은 청춘을 지나 중년의 나이로 가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청춘일 수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얻게 된다. 지금의 푸릇한 마음이 앞으로 더 연장 될 수 있게 어떠한 경험이고 시술이 필요한 거겠지. 난 그 경험을 값지게 돌려 놓아야 할 의무도 있고 책임도 있으며 권리를 마땅히 주장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써 다짐했던 수많은 말들이 살아나 나를 비로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또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조정육, <오늘 하루도 잘 살았습니다>




#오늘내가힘내야할이유

#청춘은끝도없이타올라라

#나로서세상을즐길권리

#몸뚱아리는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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