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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Dec 03. 2021

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서 ...

첫째를 낳으면서 시작된 나의 주부로서의 삶은 10여년간 계속되고 있다. 그간 블로그로 푼돈을 번 것 외에는 나를 통해 수입은 발생하지 않았고 둘째를 낳고는 재취업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았다. 첫째가 돌도 되기 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 3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려면 안정적 직장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최적이라 생각했다.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주부 공시생의 생활에 뛰어들었다. 힘들었지만 공무원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며 '된다'는 생각으로 몰아붙였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공무원이 되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둘째를 계획했고 소중한 생명은 우울증과 함께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만 해도 아이의 말은 옹알이 수준이었고 말이 많지 않은 남편과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대화는 옹알이 뿐이었다. 소통을 원했던 나는 불통의 벽에 부딪치고 그 벽에 갇혀 나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몸에 상처를 냈고 급기야 아이를 떼자고 선언했다.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내가 두 아이를 챙길 여력도 없었거니와 그 어떤 빛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 일을 감행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도 부족했다. 크리스찬도 아닌 내가 주말 예배 시간에 나가 통곡을 하며 울었던 건 나를 살려달라는 간절한 기도였고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 놓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쓸모 없는 사람의 외로움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 컴컴한 곳으로 나를 계속 끌어 당겼다.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었고 답답한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팔과 다리를 피가 날 때까지 긁었다. 그런 상처가 눈에 들어와 말할 수 없이 초라하고 안타까웠다. 나 혼자 집에서 엄마를 부르며 가슴을 치고 힘들다며 울부짖을 때 이러다 정말 미칠 수도 있겠구나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파하는 동안 뱃속에 있는 둘째도 힘들었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위해 마음을 다잡는 일이었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태교의 목적도 있었지만 외로움과 불안을 극복해 보겠다는 각오도 있었다. 늘 마음에 있었던 수채화를 떠올린 건 우연이었을까. 둘째를 갖고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집 근처에 있는 문화센터를 방문했고 배가 볼록 나왔던 나는 부끄러웠다. 태교를 위해서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그림이나 배우러 다니는 할 일 없는 사람의 사치스러운 행동 정도로 치부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선을 긋고 모양을 그리고 명암을 넣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그림이 나쁘지 않다는 걸 스스로 느낄 즈음에 둘째가 태어났다.


아이를 낳고 산부인과 창문을 통해 보이는 건물들을 스케치 했다. 병원과 조리원을 거쳐 집에 가기 전까지는 자주 볼 수 없는 첫째에 대한 그리움을 사진을 보며 그려내기 시작했다. 수채화를 배우기 위해 센터를 찾기는 했지만 스케치를 배우는 단계에서 출산을 이유로 배움을 중단했다. 집에 머무르며 일상을 스케치하고 그 위에 물감으로 채색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 마음대로 드로잉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채색 방법은 수채화를 배우러 센터에 다시 가기 전까지 계속 됐다. 아이가 낮잠 잘 때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고 그 기록들을 인스타그램에 남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 때 재료는 다양하게 사용했다. 누군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그림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통해 '창조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문화센터 선생님이며 함께 그림을 그리는 분들에게서 그림에 소질이 보인다는 말씀을 자주 들었고 그림을 완성시킬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난 점점 그림에 진심을 담기 시작했다. 잘 그린다니 재미가 생겼고 나 또한 그리는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엄마표 미술로 시간을 자주 보냈던 터라 아동미술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시간을 활용해 아동미술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임신 상태에서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했던 그 시작이 지금은 서울디지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해 예술 활동을 꿈꾸는 미대생 아줌마로 끌어주었다. 화가의 삶을 살아보겠다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그림으로 표현하는 삶을 계속 이어간다면 내 인생이 지루하게 나이들진 않겠구나 희미한 확신이 든 것이다. 누구라도 마음을 표현할 도구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몸은 나이들어도 정신은 청춘으로 살아 숨쉴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가 병들기 시작했을 때 난 관계로 부터 생긴 염증을 안고 집에서 숨죽이며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권귀헌 작가님의 '엄마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뒤 '엄마의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했다. 1년 넘게 글을 쓰고 있다. 거의 매일 한 편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며 나의 진심들과 마주했다. 육아로 힘들 때는 날을 세워 쓴 글의 말미에 아이에게 더욱 잘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고백했고 앞으로의 다짐을 통해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곤 했다. 글을 통해 다짐한 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생각으로 끝났던 전과는 다르게 약발이 지속됐다.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글을 쓰면서 이는 수시로 일어나는 감정들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림과 글쓰기는 나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가족에 대해 의미 있는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도왔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숨어있는 행복을 조금씩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래서, 지금 나의 삶은 완전한가?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다섯 살짜리 분홍 꼬맹이를 대하는 엄마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육아 대장정 길에 올라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앞으로 나가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 삶을 희생시켜 저들을 살린다 생각하지 않게 됐다. 각자의 성장 단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또한, 나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내 삶의 주인으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가는 의미와 인생의 방향을 잃어 휘청거리고 스스로를 함부로 대했던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외롭다는 이유로 내 삶을 쓸쓸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풀리지 않는 수많은 문제와 질문으로 고민스러워 힘들어하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마음을 표현할 도구 하나 정도 배워보시라 권하고 싶다. 그림이 되어도 좋고 글이 되어도 좋고 춤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데 에너지가 될 나만의 표현 도구는 거창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삶은 가지를 뻗을 것이고 그 가지는 나를 새로운 경험으로 안내할 것이다.





#거창한옷은거추장스러울때가더많다

#스스로그러한모습을나도모르게하고있을때그게바로나라는생각을하게된다

#스스로이해가안되면행동도없는나는이제조금은표현하는방법을알아가고있다

#답답하면글을쓰고답답하면붓을들고이젠방법을찾지못해허덕일필요가없어졌으니이게내표현방법아니겠나

#내게맞는방법을찾는것그것을알기까지가오래걸릴뿐이란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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