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자녀를 빨리 길러낸 친구들 또는 동생들을 볼 때면 부러울 때가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혹처럼 따라붙는 아이들 때문에 쉬운 길도 멀리 돌아가야 하고 가볍게 갈 수 있는 곳도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다 보면 짐이 불어나 있었다. 유모차에 분유통, 보온병, 물티슈, 기저귀 그리고 이유식까지 챙겨 다녔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 처지가 많이 가벼워졌지만 아직도 한참 남았다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꼬맹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생각하게 된다. 힘들 때도 물론 다반사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 여섯 살 꼬맹이와 함께 하며 얻는 소소한 기쁨으로 일상에 윤기가 돌고 아직 퓨어한 감성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행운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난 지금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은 욕심을 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첫째 아이에게 그림책을 참 많이도 읽어줬더랬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후 엄마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들과의 여러 추억들을 상자 안에 처박아두고 상황을 헤쳐 나가느라 정신없는 날들이 지나고 보니 꼬맹이는 어느새 부쩍 성장해 있었다. 오빠를 대하는 엄마를 여과 없이 눈으로 마음으로 녹음해 가면서 '이 여자 쉬운 여자가 아니구나' 싶었을 거다. 부드럽고 다정한 엄마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을 거다. 아찔한 순간이 찾아왔고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했다.
부드럽고 평온하며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첫째에게 그랬듯 '정성'을 다하는 마음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을 내서 산책을 하고 온몸으로 함께 뛰어놀고 매일 수십 번도 더 사랑한다 말하는 것 그런 사소한 것만큼은 정성으로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쉽지 않을 때는 하루 쉬고 다시 시작하더라도 그렇게 아이의 유년기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꼬맹이가 아니었다면 난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과 다르게 그네를 좋아하는 꼬맹이 덕분에 그네도 많이 타 본 것 같다. 하늘로 올랐다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신나는 바이킹을 수도 없이 탔으니 말이다. 그림책은 어떤가. 아들 덕분에 그림책을 좋아하게 됐지만 아들이 초등 1학년일 때 그 맛을 잃을 뻔한 것을 꼬맹이가 다시 느끼게 해줬다. 딸의 취향은 확실히 아들의 것과 달라서 무시무시한 모험 이야기에서 나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책들을 볼 수 있어서 나의 그림책 취향도 그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딸의 취향을 보고 있으면 투박하게 큰 나의 소녀 감성이 아지랑이처럼 물결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아이와 나눴던 기분 좋은 느낌을 떠올리는 데 뽀송뽀송한 감성이 살아나기도 한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신나는 노래에 온몸을 흔들어대는 꼬맹이와 함께 춤을 추면 나도 모르게 해맑아진다. 꼬맹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함께 걸어오며 어떤 사랑스러운 문장들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집 앞에 있는 그네에서 바이킹을 타며 천에 떠다니며 퍼덕거리는 청둥오리를 따라다녀 볼까. 계단을 오르며 하는 가위바위보. 오늘은 제대로 해보자 하면서도 지면 울어버리는 꼬맹이 때문에 어김없이 져주고 마는 오늘이었지만 그런 꼬맹이와 함께여서 엄마가 더 행복하다는 걸 모르고 있겠지.
이런 꼬맹이가 옆에 있어서 나는 늘 순수하고 감성 돋고 해맑은 엄마가 된다.
#사랑한다꼬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