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주를 하면서 느끼는 것들
이 작업은 '보도블럭 사이에 자라고 있는 토끼풀'을 재현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 사용하는 것보다 조금더 큰 드로잉 종이를 펴면서 시작되었다. 별것 아닌 것으로 부터 시작되는 작업에 동기부여는 신기하리만치 진지하고 큰 의미 덩어리를 형성하게 되는데 자칫 너무 무거워 초기에 시작한 매체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못하고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나는 것 같다.
설악산에 오르면 돌틈에서 구불구불 빛으로 몸을 일으키는 소나무를 보았을 것이다. 살기위한 몸부림으로 구불구불 방향을 옮겨가며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았는데 그 모습이 기이해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끈질긴 생명력. 끊임없는 동기부여. 돌 틈에서 자라고 있는 초록 토끼풀이 예뻐보였던 건 은유적 관점에서 나와 닮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도 너처럼 예쁘다.' 뭐. 이런 생각말이다. 모습이 예뻐서가 아니라 환경을 극복하는 토끼풀의 삶을 향한 동기부여가 나처럼 기특해보였기 때문이다. 거창하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하다못해 찌그러진 깡통도 '원하는 것을 원할 수 있기를 원해'라고 말하지 않나. 억지스럽다. 하지만 무척 자연스럽다. 우린 찌그러진 깡통보다도 못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내 안에 버려지는 수 많은 감정들이 그것과 같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나로서 다시 돌아와 하루를 살아가는 건 내가 원하는 것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 뭐라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든 또는 누군가를 위해 나를 써야하는 것에서든 말이다.
잡지 콜라주를 하다보면 신기한 게 있다. 신기하게 재미있는 부분인데. 슬슬 콜라주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평면에서 문자들이 일어난다. '너 나와' '너도 나와' 속으로 하나씩 선택하며 어디에 배치할까 고민하는 순간에 짜릿함이 있다. 토끼풀이 동기부여라면 그 의미로 일어나는 마음과 그 마음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길 그것은 내가 바라보는 희망과 일치하지 않겠나. 그건 알싸한 꿈이고 사뭇 비장한 원티드(wanted)다.
남들이 쓴 글을 마구 잘라서 장난질 치는 것 같지만 요즘 잡지 콜라주를 여러번 하면서 느낀 건 이건 '재창조'라 불려도 좋겠다는 거다. 전통에 익숙해지는 건 그것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을 익숙하게 하고 새로운 걸 창조하기 위함이라고 느끼는 이유와 같다. 합리화. 뭐. 그래도 상관없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들도 다른 정답을 이야기하지 않나.
작업 스타일이 고착되는 것 같지만 두고볼 일이다. 작업의 과정속에서 우연적 발상으로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되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다음번에는 여백이 있는 콜라주를 해보고 싶다. 오브제가 꽉 채워져 자칫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화면 구성에서 탈피하고 싶다.
#콜라주의매력을느끼는중이다
#우리모두기성품으로재창조하는삶을살고있지않은가
#이과정에힘이빠지지않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