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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아 레인 Aug 29. 2024

소풍날

선생님의 뒷모습

 "또 거기로 간다고?" "비가 또 오겠네!"

일순간에 교실이 술렁인다.

방금 전, 한 아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이번 가을 소풍 장소를

큰소리로 전한다.

내심 짐작은 했지만 현실이 되니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과

함께 한숨이 나온다.


'소풍'이라 하면 즐거워야 하는데 또 그 산을 넘어서 가야 한다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고, 과거 학교 소사 아저씨가 오래된 은행나무를

베는데 용이 승천해서, 소풍만 가려고 하면 비가 온다는

전설 아닌 전설에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친구인 막순이 집으로 갔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수탉을 풀어놨는지, 

무지막지한 날갯짓을 하며 휙 날아오르더니 덤벼든다.

하필 소풍날 당하니 너무 화가 났다.

막순이 엄마는 빗자루로 수탉을 때리려 하지만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수탉을 어찌 당하겠는가!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드디어 개봉박두!

아주 오래된 무쇠솥뚜껑이 '싸그락' 쇳소리를 내며 열린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김이 무슨 산신령이라도 나올법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허공으로 흩어지고 난 후,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게 자태를 뽐내며 등장한다.


하얀 쌀밥 정중앙에 살포시 자리한 그것은 다름 아닌 '계란찜'이다.

중간중간 콕콕 참깨가 박힌 보들보들 황금색을 띠고 있다.

뜨겁지도 않은지 막순이 엄마는 양은그릇의 양쪽 귀를 잡고

도마 위에 철퍼덕 엎는다.

"도시락 열어 보아라!" 그 소리에 약속이나 한 듯 비워져 있는 한쪽 귀퉁이를 가리킨다.

막순이 엄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계란찜 한 덩어리를 밀어 넣으신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방금 전, '대문을 들어설 때 수탉이 왜 그렇게 심술이 나있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이들 소풍 몫으로 암탉의 계란을 뺏어 오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막순이 엄마는 칠O사이다 사 먹으라며 동전까지 손에 쥐어 주신다.

순간! 소풍을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산에 도착해서 칠O사이다 마실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으니...


그렇게 우리는 소풍길에 올랐다.

"왜 오늘은 비가 안 오는 거지?"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아이들과

무슨 신병훈련소 군인들처럼 전교생이 줄을 지어 산으로 향하니,

마을 사람들은 "소풍을 가는구나!" "좋겠다!"  웬일로 비가 안 온다냐?"

밭일을 하시다가 한 마디씩 건네신다.


항상 똑같은 장소로 간다고 투덜거리던 모습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징검'이라고 불리는 열매를 따서 입안 가득 몰아넣는다.

시큼 텁텁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지만 갈증이 났던 터라 그마저도 즐거움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산속 암자의 지붕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일순간에 환호성이다.

먼저 도착한 고학년 언니, 오빠들은 주지 스님의 말씀에 똘똘한

눈빛으로 제법 진지하다.

그곳에 도착하면 으레 껏 거쳐야 할 일이기 때문에 주지 스님의 말씀을 외울 정도다.


드디어 기다리던 도시락을 먹는 시간!

칠O사이다 뚜껑 열리는 소리가 마치 폭죽 놀이하듯 여기저기서 경쾌하게 들린다.

평소에 손이 큰 선생님은 계란을 한 봉지 가득 삶아 오셨다.

"목 막히니 사이다 꼭 마셔가며 먹거라" 연신 당부를 잊지 않으신다.

사실 지난번 소풍 때, 남자아이가 삶은 계란을 욕심껏 밀어 넣다가

큰일 날 뻔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산을 내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달가워하지 않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보물찾기 시간!

매번 반복되는 뻔한 곳에 숨겨 두는 대도 난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

역시나 두리번두리번 헤매고 다니던 그때!

더벅머리 총각 선생님이 뭔가를 살짝 손에 쥐어 주시고 가신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각으로 접힌 종이! 보물이다!

선생님! 흑흑!


꼭 값어치가 크고 특별한 것이  보물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배려,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보물이다. 아주 가끔 세상이 삭막하다고 느껴질 땐,

막순이 엄마의 따뜻한 계란찜과 칠O사이다,

소풍날 돌아서서 가시던 선생님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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