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세상을 떠나 기 몇 달 전, 스마일 반지를 편지와 함께 나에게 줬다. 자기랑 엄마랑 같이 끼려고 두 개 샀다고 했다.
“엄마에게 행복한 일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는 의미로 스마일 반지를 준비했 “고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준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
딸은 내가 예전에 준 실반지와 스마일 반지를 매일 끼고 다녔다. 이제는 내가 종종 끼고 다닌다.
얼마 전, 내 손을 본 지인이 말했다.
“요새 사람들이 이런 반지 많이 끼고 다니더라고요. “
나는 ‘딸이 끼고 다니던 반지예요.’라는 말을 속으로만 하며 그냥 조용히 웃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지인이 말했다.
“어, 그거 티파니 목걸이죠? 그런데 푸른색 펜던트랑 같이 하니까 진짜 예쁘고 잘 어울려요. “
‘이 목걸이, 몇 년 전 딸이 사줬어요. 이 펜던트는 딸의 유골로 제작한 거고요.’라는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목걸이 줄이 없어서 티파니 목걸이에 같이 걸었어요. “
초반에는 딸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 커서 상황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에 말로 풀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을 살펴보며 웬만하면 아픔을 꺼내지 않는다.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공기가 무거워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