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왔나
연애 대상을 선정할 때 딱 하나를 볼 수 있다면 첫인상과 첫 느낌을 볼 것이다. 처음 얼굴을 본다면 그때의 느낌, 처음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면 그때의 느낌. 나는 내 직관을 그 무엇보다 신뢰한다. 직관은 나의 모든 세포, 모든 감각, 모든 경험의 총집합체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내 직감이 말해주는 것을 그 무엇보다 가장 신뢰한다.
내가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 직감은 대체로 맞았다. 아니 아주 높은 확률도 맞았다. 어떤 관계가 형성되기 전의 첫인상과 첫 느낌을 무한히 신뢰해야 한다. 불편했던 관계는 불편한 첫 느낌을 무시한 데서, 편안했던 관계는 불편함이 없는 감각을 따른 데서 왔다. 그 불편한 느낌, 뭔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느낌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된다. 미래의 나를 위한 다짐이다.
메시지를 나눠보거나 대화를 해보면 몇 마디만 나눠도 어떤 사람의 힘에 대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의 힘이란 자기 확신의 정도이다. 어떤 사람을 보면 어느 정도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인지 느껴진다. 나는 잘났어, 나는 이것을 잘해, 나는 이걸로 잘 될 거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자기 확신의 정도가 그 사람의 아우라로 뿜어져 나온다.
스스로를 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확신을 가진다는 것,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굳게 믿는 것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부단히 생각하고 성찰하고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강점을 밀고 나가는 용기와 끈기에서 비롯한다. 나를 믿었고, 나를 믿었기 때문에 따라온 성공 경험에서 자기 확신이 강화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 있다. 더 크게 성공할 사람들에게 강한 자기 확신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느껴진다. 저 사람은 확실히 잘 살 것 같다, 확실히 세상을 바꿀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 온다.
좋은 연애에서 필요한 자기 확신은 두 가지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한 확신. 이 두 가지 모두를 갖춘 사람들끼리 만난다면 연애가 성공할 수 있다. 성숙한 관계를 맺고 사랑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를 거부했을 때 그 사람이 나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자책하거나 반성해서 될 일이 아니다. 타이밍이 안 맞는 것이니 우선 그냥 보내줘야 한다.
사람이 성숙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이 아니라 고통이다. 고통이 없었던 사람은 성숙이 느리다. 공감능력이 특히 좋아서 고통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큰 고통 없이도 조금 더 성숙에 필요한 시간이 단축되기도 한다. 보통은 인생과 사랑에서 제대로 고통을 느껴야 자기 확신으로 향하는 길을 통과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동안 했던 연애에서 무수히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해 완전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확신이 없었던 사람을 만났던 진짜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누군가와 아주 오랫동안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마음이 가서 만났지만, 확신은 없었다. 확신이 드는 사람을 만나면 오래 좋은 관계를 맺을 텐데, 어떤 사람을 완전히 믿고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커미트먼트(commitment)에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 중에 자기 확신이 있다고 느꼈던 사람이 아주 드물게 떠오른다. 어떤 두 사람이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상대방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상대방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 일이 일어나기만 한다면 연애의 시작, 결혼의 약속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나 전념하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헌신할 수 있는 관계를 내가 피했던 것은 아닌가? 외모 타령했던 진짜 이유가 혹시 다른 데 있지는 않은 걸까?
나는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