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안정감에 대하여
연애를 하는 것이 안정감이 떨어지는 선택이라고 했지만 예외는 드물게 있다. 그리고 그 예외에 나는 보통 정착한다.
내가 가진 9개를 비슷하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나머지 딱 한 개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연애와 설렘에 대하여)에서 그 딱 한 개는 다름 아닌 안정감이다. 안정감을 원했다. 과거로 시간을 휘감을수록 더더욱 안정감을 원했다.
인생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안정감이라는 상태를 찾아갔다. 혼자 사는 집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다는 찰나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안정감을 원한다. 고요와 평온이 깨지지 않는 안정감을 원한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보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는 것이 편안한 이유는 밖이 안보다 평온이 깨지지 않겠다는 믿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밖에 나와 나무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으면 크고 작은 갈등과 무례함에서 벗어나 고요하게 홀로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연애상대에게 꼭 필요한 요소는 평온한 성격이었다. 쉽게 요동하지 않는 잔잔한 성격의 사람만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감정이 널을 뛰고, 목소리의 높낮이가 널뛰는 사람 주변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은데, 잠시만 주위에 머물러도 편안하지 않은 사람과 오래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연애 상대라면 차분하고 평온한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연애를 하면 예측가능성이 떨어져서 안정감이 줄어든다고 했지만 예측가능한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안정감이 생기기도 한다. 루틴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나에게, 루틴이 있는 연애는 편안함 그 자체이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연락을 주고받고, 비슷한 간격을 두고 만나며, 만나서 무엇을 할지 계획이 있는 연애를 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연인에게 행방을 보고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숙제가 좋다. 삶에 틀이 생긴다는 것, 내가 신경을 쓰고 나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 좋다.
간섭과 통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상대방의 불안할 수 있는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는 것도 하나의 할만한 과제이다. 집에 너무 늦게 들어오는 것, 너무 사람들과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도 마냥 건강하지만은 않은 일이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혼자일 때보다 조금 더 절제된 삶을 사는 것이 오히려 좋다. 내가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 그 사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내 삶에 선을 만든다는 것이 좋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안정감을 상대방에게 주려고 노력한다. 감정기복이 적은 안정된 삶을 만들어나가려고, 불안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불안도를 지닌 사람인지, 연애에서 어느 정도의 안정감을 제공받기 원하는지 가늠해 본다. 불안도가 조금 더 높아 보이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안정감을 주려고 노력한다.
나는 평온하고 차분한 사람이지만 관계에 있어서 꽤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연락이 잘 되고 감정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이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봐 너무나도 불안했고,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알 수 없는 마음에 불안하고 괴로워했다.
연인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 특히 관계에서 두 사람 모두가 비슷하게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정말 드물고 소중한 일이다. 감정이 마이너스로 격하게 떨어지지 않는 관계, 늘 잔잔하게 좋은 느낌이 드는 관계가 장기적으로 정말 행복한 관계이다.
<평온한 성격, 루틴, 연락, 절제, 표현>이라는 5개의 엘리멘트(요소), 그리고 서로 비슷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연애를 하면서도 안정감의 엘리멘탈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