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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그와는 결혼을 생각할 수 없다

연애와 말 못 할 이야기에 대하여

by 해센스

연애를 하며 결혼이 떠오르는 상대는 단지 내 취향의 외모, 남은 생을 편안하게 해 줄 것 같은 직업과 조건을 가진 상대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만져질 수 있는가이다. 가면 쓴 상대의 얼굴을 만져 살갗의 촉감을 느낄 수 없다. 섬세하고 세련된 매너의 딱딱하고 매끄러운 가면을 쓴 그는 한때 나에게 결혼하면 딱 좋을 것 같은 완벽한 남자처럼 보였다.


매일 아침 “출근했어~”를 보내고 오후 다섯 시 반에 “퇴근했어~”를 보내던 그, 삼 년 동안 단 한 번도 혀가 고꾸라진 목소리를 들려준 적 없고 가끔 회식을 가도 자리를 옮길 때마다 전화를 주고, 집에 들어가면 메시지를 남겨놓던 그, 각 잡히고 반듯했던 자세와 생활 습관만큼 그의 가면 역시 정확히 각 맞춰 단단히 붙어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시간이 지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를 믿었고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다정하고 친구구같은 아빠처럼 그에게 의지했지만, 진짜 그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처음 사귄 사람이 아니었지만 서로를 첫사랑이라고 부를 만큼 순수하고 특별했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본 그림 속의 우리는 나와 가면 쓴 그였다.


29살의 나는 헤어지고 나서 다시 연락 온 그에게 다른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우리가 서로 사랑했는데 만난 지 2주도 안된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냐고 했다. 결혼하기로 한 적 없고 그냥 그때 들었던 나 혼자만의 생각을 말한 건데, 너무나 순수했던 그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중요한 건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하지 못했던 결혼 생각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과 진짜로 했다는 것이다. 만나자마자 결혼생각부터 하는 병은 아직도 여전히 앓고 있다. 그래도 이 병이 모든 사람에게 도지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고 투명해서, 살아온 인생을 소상히 말해줄 수 있고, 가족 얘기마저도 들려줄 수 있어서 가면 아래의 피부결이 만져지는 사람이라면 결혼 생각 할 수 있다. 번쩍번쩍하고 번지르르하지 않고 생각보다 별 것 없고 새로 만난 연인이 놀라서 달아나버릴지도 모르는 꺼칠꺼칠하고 여기저기 까지고 찢어져 지저분한 상처투성이인 민낯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 생각 할 수 있다.


서로의 가면 아래 모습을 알고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처를 안고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기까지 어떻게 삶을 다잡아왔을지 무언의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평생이라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그래, 나 이렇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단단함과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온전히 의지해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면과 진짜 내면의 나 사이에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을 탓할 순 없다. 숨기고 싶은 과거나,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았던 환경이 주는 상처를 꾹꾹 눌러오며 살았던 날들만으로도 고됐을 터이다. 현생을 살아가야 하니까, 씩씩한 모습으로 밥벌이도 해야 하고, 조금은 번지르르해 보이는 모습을 뽐내며 연애라는 것도 해보고 사랑이라는 것도 느껴봐야 하니까 못나 보이는 나 같은 건 딱딱한 가면으로 좀 가리면 좀 어떤가. 처음부터 상처와 흉터를 드러내고 다가가면 마음을 열기도 전에 도망가버릴 것이라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아도 안다.


그냥 그렇게 살다 보니, 그렇게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결혼 빼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며 살아가다 보니 가면을 벗지 않는 것에, 가면 아래 모습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어느 순간에는 믿음의 도약을 해야 할 연인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당연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답답했다. 결혼을 하고 나만의 든든한 울타리를 꾸리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데, 잘 모르는 사람과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는 없었다.


나 역시 새로운 사람 앞에 섰을 때 가면을 내리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불안장애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라 그런지 불안해서 죽을 것 같았다. 온몸이 아파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했다. 만났던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나려고 했던 것, 전남자친구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나에게 큰 일이었던 것은 이 불안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가면 속의 나를 아는 사람을 다시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이 새로 누군가를 알아가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라고 낮은 자존감은 수차례 생각했다.


제일 바깥쪽에 붙어있는 아주 얇은 껍데기 같은 가면부터, 피부와 강하게 밀착돼 고통 없이는 벗기도 힘든 가면까지 사람들은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연인에게 얼마나 많은 가면을 벗은 모습을 보여주었는지에 따라 함께 할 때 홀가분한 정도, 마음 깊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 내 연인은 몇 겹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지, 나를 대할 때는 몇 개의 가면을 내려놓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완전한 민낯의 그를 영영 마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가면 한 개를 벗으면, 같이 비슷한 무게의 가면 한 개는 벗고 내게 비슷한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친밀해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가면을 내리는 것, 그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누군가가 내 본질에 가까운 모습, 내 과거 상처의 민낯을 보는 것, 어떤 일이 있었길래 지금의 이런 내가 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런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지를 깊게 알게 되는 것은 아주 많이 두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을 때,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울면서 속으로는 누가 나를 좀 알아줬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라게 될 때, 누군가 한 명에게는,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 연인에게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속도로 어느 정도 상처를 드러내야 하는지는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했다. 마음이 괜찮은 무탈한 날들에는 어떤 상처쯤은 나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혹시 모를 상황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보다 몇 배는 강렬한 햇살 같았던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고 나서 아낌없는 위로와 사랑을 받았던 적도, 감정이 섬세하고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꼈던 누군가에게 급발진해서 상처를 털어놓았다가 너무도 아픈 화살이 되어 오히려 다시 찔렸던 적도 있다. 털어놓아야만 살 수 있었던 시절의 내가 있었고, 지금은 털어놓지 않아도 나름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하지만, 가면을 벗고 말하기 힘든 비밀을 털어놓고 상처를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 연인과의 대화 속에서 우연히 그 상처가 드리워지는 상황이 왔을 때 대화를 회피하게 되거나 상대방은 무슨 일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는데 날 선 가시 돋친 태도로 연인을 대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어떤 단어나 경험이 나에게 우울감과 회피하고 싶은 마음, 때로는 분노의 트리거가 되는지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가면을 조금씩 벗어나가야 한다.


단단한 가면을 쓴 채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 온전히 이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연인이 단지 “연인”이라는 단어에 묶인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속 방문에 들어오도록 허용한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점차 가면을 벗고 내 모습을 드러내야 진짜 서로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신이 파트너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것과 나누기 싫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선택이 관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친밀감이란 결코 그 뜻대로 되지 않는다.

- 스티븐 카터, <가면을 벗어라>, <<사랑을 움직이는 9가지 사소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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