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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숲에서 마시멜로우 구워먹으며 캠프파이어 할 사람

쳇바퀴를 타지 않을 인생

by 해센스

사귀는 첫날부터 평생에 대해 생각한다. 때로는 사귀기 전부터 그 사람과 내가 꾸리게 될 가정에 대해 생각한다. 어디서 같이 살 지, 집안일과 육아는 어떻게 분담할지, 우리의 특성을 나눠가진 아이의 교육 방향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금사빠와 상상은 별개의 문제이다. 사귀기 전부터 이런 상상은 중요하다. 기대되는 산뜻한 그림이 그려져야 이 연애에 몰입이 가능하다. 연애는 단순히 현재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이다. 연애를 한다는 것은 둘의 미래도 현재로 끌어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가 행복해야 현재도 행복하다.


그 사람의 현재 건강상태를 보고 신체 나이를 측정하고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보고 기대 수명을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정도로 살지, 나보다 오래 살지에 대해 가늠한다. 살찐 사람보다 오히려 마른 사람에 대한 선호는 무의식적인 기대수명 측정과도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연인, 그리고 미래의 남편, 할머니가 되었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내 옆에 오래 있어주려면 비만해서는 안된다.


난 그림으로 생각하고 상상한다. 미래의 남편이 배가 볼록 나와 옷태가 망가져 있는 모습이라면 안 된다. 몇 년 후에도 나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했을 때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나와있으면 안된다. 그러면 관리를 하지 않은 남편을 둔 아내가 되는 것이고 내가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당연히 신혼여행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나는 신혼여행을 아주 무료하게 보내고 싶다. 둘만의 아주 무료하고 심심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관광지를 돌아다니거나 몰디브나 발리 같은 휴양지에서 다른 커플들 틈새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고 북유럽에 가고 싶다. 한적하고 깨끗해서 가고 싶은 것도 있고 여행에서 둘이 함께한다는 것 외에 어떤 목적 달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도 있다.


오로라를 보고 싶은데 오로라 관측 확률이 높은 캐나다에 가는 대신 북유럽에 가서 오로라 헌팅 로드트립을 가고 싶다. 신혼여행 기간 동안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돌아와도 괜찮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북유럽까지 간 후 오로라를 보러 로드트립을 가서 나무 숲에서 캠프파이어하면서 마시멜로우나 구워 먹는 무료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직장인의 소중한 휴가, 한 번뿐인 신혼여행, 가장 예쁘고 멋있을 때 사진을 남기러 여행을 간다…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사람과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다.


그냥 따뜻하게 입고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가서 앞으로 함께할 인생과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해 길고 긴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러운 사진이나 한두 장 남겨오고 싶다. 오로라를 본다는 목적을 달성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여행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싶다. 오로라를 보러 간다는 것은 핑계인 여행을 떠나고 싶다.


마치 이런 신혼여행처럼 대단한 것이 없는 곳에서 시간을 죽여도 충만하게 느껴지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대화가 재미있고 옆에 존재하는 것이 편안하고 바라볼 때 흥미로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쳇바퀴 같은 표준의 평범한 삶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미래가 그려지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다. 결혼을 해서 둘이 각자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전셋집을 구해 살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또래 아이들과 비슷하게 학원을 보내고, 돈을 모아 집을 사고, 회사와 육아를 병행하며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삶이 그려지는 사람을 만나면 숨이 턱 막힌다. 대한민국 표준 부모가 되어 부모는 부모의 쳇바퀴, 아이는 아이의 쳇바퀴를 타다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인생이 반갑지 않다.


쾌적한 곳에서 월세를 살면서 돈을 묶어두지 않고 주식투자를 해서 더 큰 현금창출을 하고 직장생활을 통한 노동소득 외에도 다른 파이프라인으로 현금 창출원을 늘리며 머지 않은 미래에 회사에 다니지 않고 내가 보스가 되는 일을 하고 투자소득으로 시간과 돈을 자유롭게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아이는 학원에 보내지 않고 자기주도 학습을 시키고 예체능이나 기타 다른 분야에서 관심 보이거나 재능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만 집중적으로 시킬 것이다.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신혼여행으로 굳이 관광지에 가지 않아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 살면서 가고 싶어질 때 같이 시간을 내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내 힘으로 내가 꿈꾸는 이런 삶을 살기 위해 토대를 마련해 가고 있다. 그런데 전세, 차곡차곡, 근검절약,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삶을 사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인생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비슷한 그림을 상상하는 사람과 연애를 해야 지금도, 미래에도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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