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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노출시키고 하는 연애는 어떨까

에세이 쓰는 작가가 처한 운명

by 해센스

브런치 작가가 된 후의 연애는 어떨까? 2023년 2월부터 브런치에 글을 썼다. 이별하고 나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가가 된 나에 취해 그 글들이 앞으로의 연애에 미칠 영향 따위는 생각지 못했다. 그 당시 내가 당면한 문제인 이별, 그리고 2022년 말에 진단받은 ADHD라는 주제로 신나게(때로는 마음으로 울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쳐서 글을 썼다. 여러 가지 일들이 한 번에 찾아와 정신적 충격에 허우적거리던 때에, 내 인생은 데일리 플래너에 의존해 겨우 겨우 회사에서 할 일 쳐내기, 영어스터디, 브런치 세 개가 거의 다였다.


올해의 연애와 썸 역시 자연스럽게 모두 브런치와 함께했다. 연애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스쳐 지나간 인연들은 내 브런치를 구독했고, 내 글을 꽤 읽었다.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읽어준 분도 있었고, 읽지 않다가 나와 조금 더 친해지고 나서 혼자 쭉 읽어준 분도 있었다. 브런치에 내가 그날 느낀 중요하고 강렬한 감정을 주로 적었기에, 혼자 누군가를 좋아했던 흔적 역시 브런치에 남아있다. 내 글을 뒤늦게 읽고 나서 나의 감정선에 적잖이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글에는 과거에 연애와 사랑을 할 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뒤섞여 있지만, 어쨌든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때의 나에게 갑자기 중요해졌으니 사랑에 대해 적은 것일 테니.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이것들이 다 내 얘기인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단념했던 흔적,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던 흔적,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감정 역시 브런치에 담겨 있다. 진짜로 글을 쓰며, 과거에서 빠져나와 현재를 사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이제 정말 과거와 현재를 뒤섞어 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이별 후에 과거의 연인의 편에 서서 스스로의 문제점을 책망하던 사람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나를 좀 더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과거의 연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더 많이 이해받지 못했던 나 자신을 조금 더 연민을 가지고 바라본다. 내가 이해해 줬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이해해 줬던 과거의 연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 역시 늘 지닌다. 못해줬던 것은 늘 다음 사람에게 해줄 수밖에.


조금 더 특별한 인연은 내 브런치를 구독해 주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새로 알게 된 이성이 어느 날 실명으로 구독을 꾹 해준다면 나에게 관심을 가져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인류애가 많고 글을 좋아해서 구독해 주는 지인도 있지만 굳이 구독을 안 해도 얼마든지 글에 접근가능한데도 구독자 목록에 이름 석자를 박는다는 것은 나에게 꽤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그 사람들에게 마음을 더 활짝 열었다. 나를 구독해 주고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관심이 고맙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내 글들을 읽고도 나를 받아들여줄 수 있을까? 발행한 글이 열몇 개였던 시절부터 생각했다. 글을 보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를 텐데, 내가 가진 뇌신경학적인 특이점, 그리고 지난 이별에 대해 온라인에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겠다는 이상함, 그리고 글들을 읽고 나서 생길 편견과 충격까지 끌어안고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그냥 브런치를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위험 감수를 해본 것이었다. 사람들이 글을 읽고 나서도 나를 편견 없이 전과 동일하게 대할까, 관심과 호감을 보였던 것 같은 사람이 내 글을 읽고도 나에게 호감을 유지할까 궁금했고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결과가 좋았고 인생에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약간의 신뢰를 가질만한 사람들에게는 브런치를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 의외로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뿐 아니라 연애를 하는데도 이렇게 너무 많은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nobody)이 되는 것보다는 어떤 사람(somebody)이 되는 것이, 특이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더라도 어떤 특별한 사람(someone special)이 되는 것이 연애에 유리하다.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것 자체를 좋게 보는 사람도 있었고, 내 글이 좋다면서 나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가 말해준 적은 없지만 혼자 이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다. 과거 연애에 대한 글을 읽고 나의 사랑법이 마음에 들어서, 자기도 이런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있을까라고. 마치 나는 솔로에서 직진하는 순정남을 보고, 혹은 감정에 솔직한 걸크러쉬 여성을 보고 이런 사람이랑 사랑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듯, 내 글을 읽고 누군가 그렇게 생각했으려나라고도 스치듯 생각했다. 물론 가능성은 낮고 내가 TV를 보거나 책을 읽고 했던 생각을 대입해 본 것이다.


나는 주변 지인들의 사랑 이야기, 정신적인 어려움, 트라우마, 호불호, 가치관 등을 이 정도로 모르지만, 내 글을 읽는 지인들을 나에 대해 훨씬 많이 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몰래몰래 읽고 가는 지인들도 꽤 있을지 모른다. 구독하지 않고 매일 읽는 지인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이 정도로 사적인 글을 쓴다면 나 역시 하루에 한 번씩 가서 읽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사생활과 속마음을 읽는 것만큼 방구석재미나 출근길, 사무실 속 재미를 주는 일이 있을까.


누가 어떤 글을 읽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날짜별로 읽혔던 글 30개까지 작가에게 노출이 되어 어떤 글들이 읽혔는지 알 수 있는데, 매일 최소 30개의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 브런치에서 구경온 사람이 쭉 읽다 갔을 수도 있고, 나를 새로 알게 된 사람이 내 글을 쭉 읽다 갔을 수도 있다. 어떤 날은 유독 읽힌 글 30개가 연애에 관한 글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날이 있다. 특정 시간대에 연애에 대한 글들만 집중적으로 읽힌 것을 보았을 때는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나를 알아보고자 내 연애관이나 과거 연애담을 이렇게 열심히 읽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든, 심리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든 나를 만나서 알아간다면 오랜 시간이 걸릴 내용을 글을 통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나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없냐고 물어봤는데, 브런치에서 많이 알 수 있어서 별로 없다고 했다. 나는 궁금한 점이 많고 질문이 많은데, 상대방은 나에 대해 언제 어디서든 접근 가능한 다른 창구가 있는 기분이다. 어찌 보면 편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는 시간을 지나, 누군가가 글을 읽고 나서도 나를 받아들인다는 확신을 얻으면 꽤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그 사람 앞에서 자연스러운 나 자신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 나에 대해서 꽤 많이 아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준다고 인지해버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빨리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상대방이 마음을 활짝 열기까지는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연인들은 서로 꽤 비슷한 속도로 자신의 이런저런 부분을 터놓고 서로를 조금씩 조금씩 더 편안하게 느낀다. 그런데 에세이 작가와 에세이 작가가 아닌 사람이 만났을 때는 그런 대칭성이 조금은 깨진, 어찌 보면 약간은 특이한 관계로 시작하게 된다.


내가 그를 아는 것보다 그가 나를 훨씬 더 많이 알고 시작하는 관계, 내가 그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는 나 몰래 나를 조금 더 속속들이 파해치고 결론 내려버릴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는 관계의 운명에 처해 버렸다. 작가가 되어 조금은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관심에 대한 대가는 가혹하다.


나의 새로운 연인에게 : 글 밖의 나를, 너로 인해 새로운 버전이 되는 나를 봐주길


당신이 나의 방식을 정한다. 연인은 사랑하는 자이고, 동시에 연인의 사랑의 방식을 결정하는 자이다.

- 이승우, 사랑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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