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향해 내달릴 수밖에 없는 것
이성적 판단은 끝이 나고서야 가능하다. 내 의지로 끝을 내든, 상대방의 의지로 끝이 나든 일단 감정의 지배에서 한 발짝이라도 물러난 상태가 되어야 이성적 판단이 시작된다.
사랑은 이상화이고 환상이다.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엷은 혐오감을 가진다. 그 엷은 혐오감으로 인해 사람 간의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다. 타인에게 엷은 혐오감이 없다면 그를 나와 동일시했거나 이상화했거나 아니면 둘 다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연애의 욕망이 시작된다. 저 사람은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고, 나와는 통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헛된 환상에서부터 이 사람과 나는 원래 이어지기로 했다는 식의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한다. 원래 이어지기로 했으니까 내가 액션을 지금 취하지 않든, 지금 당장 취하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언제가 됐든 서로를 알아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사랑에 빠질 것이고 사랑에 빠지면 서로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빠져 든다.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 이 사람과 나는 만나게 되어있다는 이상한 확신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저 편의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버린다.
이 사람의 실제와 가까운 모습을 알게 되면 이상화 속 운명의 상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 두려움이 그를 제대로 천천히 알아갈 시간과 노력에 대한 필요성을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이미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은 감정의 바이러스로 병든 마음, 그리고 이상한 확신이지 이성적 판단이나 경험에서 얻은 통계치가 아니다.
지금까지 표현을 잘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지 않았더라도 또다시 표현을 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무모한 의지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이성이 하는 일이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난폭운전을 하는 환상에 사로잡힌 열정이 하는 일이다. 아무 데나 부딪쳐서 여기저기 다치고 멍들고 입원실에 누워있는데 상대방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그런 지경까지 몰고 가야 끝이 나는 일이다.
사랑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아프다. 다 앓고 지나가야 끝이 난다. 서로가 맞지 않는 것을 직접 느껴야, 나보다 이성적인 상대방이 나를 버려둔 채 먼저 환상의 링을 끊고 탈출해야 이성이 그제야 조금씩 눈을 뜬다.
행복한 사랑은 기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내가 이상화한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기적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조금 더 인류애가 많은 사람들끼리 만난다면 충분히 일어 남직한 일이다.
하지만 아플 것이라고 예상했던 관계가 아프지 않은 것,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마음을 돌려받는 것은 기적이다.
애초에 세상에 없는 것을 이상화했기에 어떤 개체가 이상화된 상태를 유지하며 사랑을 돌려준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