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동전 플리퍼(flipper)는 무엇인가요?
연애와 이별은 동전의 양면이다. 연애는 늘 이별을 품고 있고, 그 둘은 함께 다닌다. 연애의 이면에는 이별이 있고 이 동전이 옆면을 따라 굴러다니며 연애의 면, 이별의 면 쪽으로 번갈아 기울다가 연애가 바닥을 향하게, 이별이 윗면을 향하게 멈추어 바닥에 납작하게 붙으면 한 때 연인이라고 이름 붙었던 관계는 너무나도 평범한 이별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속하게 돼버린다.
연애의 면이 위를 향할 때 했던 모든 달콤한 말, 미래에 대한 계획, 둘에게만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던 모든 것들, 언제든 연락하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미약한 믿음 같은 것들은 이별의 면이 위를 향한 채 동전이 멈춰버린 후에는 모두 한 때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납작한 동그라미 세상에 갇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세계에서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했었지만 의미 없는 말, 있었지만 없었던 것 같은 사람, 내 삶의 코어였지만 뿌리째 종적을 감춰 더 이상 만질 수도, 그림으로 그려낼 수도 없는 관계, 허무하다고도 말하기 허무한 것이 되어버린다.
기적 같은 우연의 반복, 어쩌면 운명이라 이름 지을 수 있는 연으로 두 사람의 마음과 타이밍이 맞아 한 면에는 연애, 다른 면에는 이별이 적혀있는 반짝반짝한 새 동전이 탄생한다. 처음에는 연애라고 쓰여있는 동전의 앞면만 보며 기뻐하고 웃음 짓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이 주인공이 되어 살게 될 상상의 궁전을 지어나간다.
연락과 만남을 이어가며 동전이 구르기 시작하고 아직 얇디얇은 동전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휘청인다. 연인이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내가 두려워하는 지점들을 비추기 시작하면 이별의 단면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온다. 해피엔딩만 있는 상상의 궁전은 희미해지고 어쩌면 평범한 엔딩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의 지평을 양방향으로 열어 놓게 된다.
이별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나 믿음, 이별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가능한 것도 건강한 것도 아니다. 내 안에는 동전의 앞면을 지켜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이상을 지켜내야 한다는 목적이 자리한다. 그 목적이 위배되면 겉으로는 ‘연애-이별’ 동전이 멈추지 않고 굴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는 행복보다는 자기기만과 그로 인해 영혼이 깎여나가는 고통이 더 진해지고, 이내 연애 동전 역시 힘없이 흔들리게 된다.
누구나 나의 이상과 세간의 인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많은 사람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가진 이상을 지키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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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앞날이 조금 불투명하더라도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내가 정말 중요시하는 가치를 지닌 사람을 선택한다. 정말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상대를 만날 수 있을지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조건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동반자 관계가 아닌 적당히 타협한 관계를 이어 나가다 보면 우리 영혼은 조금씩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하기보다 다시는 연애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굴복했음을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패배감은 나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갉아먹는다.
- 알랭 드 보통 기획, 인생학교 지음, 안전 이별(Stay or Leave)
갓 구워져 나온 얇디얇은 연애 동전이 서로의 인생에 불어닥치는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두껍고 단단해지려면 시간과 신뢰, 특별한 사건들이 필요하다. 아직 신뢰와 특별한 이벤트가 쌓이지 않는 초기의 연인들에게 내 이상과 다른 연인의 외형, 꿈, 조건 등은 너무나도 쉽게 동전을 이별의 단면으로 뒤집을 수 있다.
어떤 말, 행동, 모습이 내 연인의 동전을 기울이는 것일까, 그에 앞서 나에게 있어 동전 플리퍼(flipper)는 무엇일까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연인이 된 후에도 서로의 어떤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어떤 모습에 이별을 생각하게 되는지 함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동전 플리퍼는 연인의 외적인 자기관리와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주로 이 두 가지 때문에 어떤 이유로 호감을 느껴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예쁜 동전들이 뒤집혔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믿음, 어떤 일이 있어도 관계를 지켜낼 것이라는 믿음이 연인 관계에 있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연인으로 존재하기 이전에 우리는 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했고, 연인이 되고 나서도 나의 이상을 지키는 것은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자면 자존감과 존엄성을 지키는데, 그로써 패배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데 중요하다.
나를 지키는 방법이 때로 이별일 수밖에 없다면 이별을 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은 연애를 지속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다. 때때로 이별을 생각하는 스스로를 너무 나무라지 말자. 이별이라는 동전의 다른 면도 생각할 수 있는 건강한 자존감에 오히려 건배를 제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