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난 어땠을까
연인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최소한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연인이 주던 에너지가 전달되고, 연인이 가지고 있던 습관이 전이되었다. 헤어지고 난 후에도 습관은 나에게 달라붙어 내 안에서 생을 이어갔다.
대학생 때 스터디와 자기계발에 진심이던 사람을 만났다. 동기부여 단톡방부터 시작해서 영어스터디, 코딩스터디에 봉사활동까지 열심히이던 분이었다. 나는 우선순위의 맨 아래에 있다는 생각에 늘 불만이었지만, 그 사람을 만나고 나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스터디라는 것에 나도 뒤늦게 눈을 떴다.
나의 대학생활의 대부분은 여유로운 시간표 배치, 통학, 미드와 리얼리티쇼 보기, 명동 가서 쇼핑하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방송과 패션이 주요 관심사이고 혼자 노는 것도 좋아해서 리얼리티쇼 보고 옷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했다. 시험과 과제를 하며 학교 공부 따라가기에도 벅차고, 남는 시간엔 노는데만 치중했었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왔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취업할 때 즈음에 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스터디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해 줘서 취업대비용 스터디를 내가 직접 모집해서 할 수 있었고, 효과가 있었는지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공기업 취업 관문을 뚫을 수 있었다.
나 외에도 우선순위가 넘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지쳤어서 입사하고 나서는 나와 연애에 지극정성인 사람을 만났다. 취업도 했겠다 여행하고 놀고 추억 쌓는 것이 우선순위이던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그 사람과 함께 예쁜 사진을 남기며 우리가 살던 지역 주변과, 전국 이곳저곳을 함께 여행했다.
이 사람을 만나고 나서 누군가에게 올인(all in)하고 진심과 정성을 다 쏟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누군가를 통째로 다 믿어버릴 수도 있구나, 완전히 의지할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취미와 취향을 함께했고, 그 경험을 잊을 수 없어서 그 이후로 취미와 취향이 맞는 것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연인의 크고 작은 특성 흡수는 계속되었다. 만날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을 보고 에너지를 얻었던 나는 그 사람의 밝은 에너지를 흡수해 더 밝고 경쾌한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최대한 환하게 맞아줘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고,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해 체감하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팝송을 듣고 실시간으로 받아 적는 사람을 보고 감명받아서 팝송이 귀에 꽂힐 정도로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나는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들리고 의미가 다 이해될 때까지 팝송을 반복해서 들으려고 했다.
최근에는 야근과 주말근무를 연속해서 하면서도,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내가 읽는 책이나, 읽어야 하는 책을 나눠서 읽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 가까운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는 나에게 꽤 영향을 많이 미친다. 나는 밥을 먹을 때는 책을 보지 않는데, 어제는 왠지 밥을 먹는데도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아이패드에 영상 대신 전자책을 띄워 놓고 밥을 먹었다.
늘 연인의 좋은 특성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왔다. 지금의 나는 몇 가지 스터디에 자발적으로 나가기도 하고 직접 하고 싶은 스터디를 꾸리기도 한다. 동기부여와 자기계발에 진심이고, 누군가와 만나면 올인(all in)해서 진심과 정성을 다 쏟는다.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 일단 통째로 다 믿어버리고, 어느 날 누군가가 나한테 주었던 햇살 같은 에너지를 연인에게 주려고 한다. 글도 쓰고, 영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밥 먹으면서 책을 띄워놓고 읽기도 한다.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난 어땠을까. 나를 스치고 간 연인들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형태로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