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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다, PMS와 세로토닌

아토목세틴,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9일 차

by 해센스

어제 일주일 만에 병원을 찾았고, 다시 같은 용량 아토목세틴 18mg, 항우울제(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5mg을 2주 치 처방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어땠냐고 물었다. 괜찮았다고 했다. 약이 정신적인 힘듦을 신체적인 힘듦으로 바꿔 정신적 고통을 상쇄하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성적이고 생산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해 줘서 첫 진료와 처방비 18,000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있었다.


기분이 어땠냐고 하길래 기분이 없다고 했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그렇게 업되지도 않고 다운되지도 않고, 감정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신체적인 사이클상 그런 건 아니냐고 해서, 생리적인 사이클 상으로는 지금 감정적이어야 하는 시기인데, 감정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 PMS 우울증(PMDD, 생리 전 불쾌증후군) 때문에 평균적으로 한 달에 2~3일 정도 우울하다고 했는데, 항우울제(SSRI)가 PMS에도 도움 되는 약이라서 괜찮을 것이라고 하셨다.


SSRI :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항우울작용이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선택적으로 억제하여 세로토닌 양을 늘려서 작용을 증강시키는 약제로, 우울증 외에 공황장애 등 불안장애에 이용된다. - 의학. 간호 약어해설사전


PMS(생리 전증후군)은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과 같이 큰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그러한 변화들이 불러일으키는 증상들 중 심리적 뿐 아니라 신체적 증상에 대해서도 항우울제가 효과가 있다. PMS가 오기 전 SSRI를 복용하면 기분부전, 우울감, 불면 등 정서적 증상뿐 아니라 두통, 두근거림, 구역감 등 신체적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보통 저용량의 SSRI로도 효과가 있으며 PMS 발생 7~14일 전 무렵에만 약물을 예방적으로 복용해도 지속 복용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결과도 있다. - 정신과의사 송어진 블로그


집중하는 것은 어땠냐고 하길래, 하기 싫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효과는 있었는데, 집중을 유지하는 것에는 별차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크게 불편함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같은 용량을 다시 처방받았다.


약의 부작용은 꽤 있다. 구토감, 위장 장애, 졸리고 나른함, 수면의 질 저하를 확실하게 느꼈고, 시력도 조금 떨어진 것 같았다. 안경을 안 써도 어느 정도 잘 보였는데 지하철에서 안경 없이 글씨가 더 잘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단기간에 체감한 변화였다.


약을 처방받기 직전에 극도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서 역류성 인후두염, 식도염, 수면의 질 저하를 느끼고 있었는데, 아토목세틴을 복용하니 속 쓰림이 더 심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이전에 생겼던 증상이 자가 치유 되면서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 그런데 소화가 안되기는 한다. 어젯밤에는 복통 때문에 새벽에 깼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도 카페인 효과도 있었던 것 같아서 오후에 카페인 섭취를 안 하면 약을 먹어도 잘 잘 수 있는지 좀 더 테스트해보려고 한다.


아토목세틴, 항우울제(SSRI)를 복용하고 나서 추가적으로 느낀 효과로는 섭식장애도 해결된 것 같다. 밤에 뭔가가 먹고 싶은 증상이 아주 오랫동안, 어렸을 때부터 있었는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밤에 음식 생각이 아예 안 난다. 속이 쓰리니까 그것을 해결하려고 군것질을 조금 하기도 했는데, 약을 먹고 나서 실제로는 그렇게 음식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식사 시간에 음식이 앞에 있으면 양만큼 먹고, 없으면 안 먹는 정도의 반응이다. 전에는 즐거움을 위해 음식을 탐했다면, 지금은 졸리고 나른하고 멍하다는 느낌이 압도적이고 간식이나 야식 섭취를 포함해 쾌락을 위해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해야겠다는 충동성이 덜한 느낌이다.


폭식증과 세로토닌: 세로토닌은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음식 섭취량을 줄이려는 욕구를 일으키게 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배고픈 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달고 기름진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 이로 인해 폭식을 하게 된다. 단 음식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증가해 포만감을 느끼게 되므로 폭식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적 세로토닌 흡수 억제제(SSRI)를 통해 음식을 먹지 않아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 위키백과, 세로토닌


콘서타를 복용했을 때 든 생각은 “원래 다른 사람들은 평상시에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였어?”였다면 아토목세틴을 복용하고 드는 생각은 “원래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만사에 감흥이 없는 거였어?”이다. 감정기복이 덜하고 우울하지 않아서 편안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위쪽 방향으로의 기복도 없으니까 좋은 기분도 전보다 덜 느낀다. 하늘만 봐도 예뻐서 좋고, 음악을 들으면 좋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너무 맛있고, 재밌는 것을 보면 재밌었는데, 감정 자체가 무뎌졌다. 다른 일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전에는 항우울제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길게 복용을 안 했었는데, 조사를 해보니 완전한 효과 발현에 4~6주가 걸린다고 해서 꾸준히 복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어떤 효과를 내는 것인지 전에는 자세히 조사해보지 않았는데,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라고 하니 노르에피네프린(노르아드레날린) 재흡수억제제인 아토목세틴과 함께 복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PMDD(생리 전 불쾌증후군) 때문에 우울감뿐만 아니라 특히 연애를 할 때 연인과의 관계에 있어 굉장히 안 좋은 작용을 했던 것 같아서 앞으로 연애를 한다면 필수로 SSRI를 꾸준히 복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물적인 효과 외에는 이별과 그 전의 갈등 등으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긴 했는데, 전과 달리 주변에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조금 수월하게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밖으로 불러내주고 편하게 이야기 나눌만한 사람들이 생겨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고, 그래서 외롭다는 감정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요즘 운동량이 줄었는데, 신체 활동을 다시 늘려보면서 약물적인 효과 외에도 운동으로 기분을 끌어올려봐야겠다. 그리고 혼자 음악 들으면서 발걸음 가볍게 산책을 해보면서 전에 느꼈던 좋은 기분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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