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목세틴 투약 일지 1
올해 1~2월에 ADHD약 콘서타와 항우울제를 처방받아서 복용하다가, 부작용과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약을 끊었었다. ‘콘서타 효능을 끝까지 체감해 보겠어. ’하면서 용량을 계속 올려보다가 45mg까지 복용하고 잠 못 잔 상태에서 핫식스 6병 마신 것 같은 기분 나쁜 각성감과 오히려 더 집중이 안 되는 느낌에 약을 딱 끊었었다.
그런데, 요즘 우울감이 스멀스멀 찾아오고 ADHD약을 복용했을 때 기분 좋아졌던 느낌이 떠올라 다시 전에 진단받았던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인생에 뭔가가 고장나 가고 있는 기분, 나의 뇌가 인간관계를 더 꼬이게 만드는 기분 때문에 처방약을 복용해 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땅에서 자란 야채와 채소를 먹어야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서,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체감하고 믿어서 샐러드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거기에 기분 좋아지게 한다는 비타민 B군과 SAMe를 챙겨 먹어보고 있는데 역부족인 느낌이었다.
우울감이란 이런 것이다. 주말 낮에도 뭔가 쭉 다운돼서 일부러 햇볕 잘 들어오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결국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울면서 걸어오는 일, 모자 쓰고 울면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온다거나 혼자 잠드는 밤에 이불을 머리맡까지 푹 덮고 잠시 호흡을 멈춰보는 일 같은 것이다. 반복되는 어떤 일들과 고민이 고통스러워서 이대로 그냥 삶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이따금씩 홀로 생각해 보는 일이다.
다 나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냥 호르몬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것을 아니까 ADHD 약의 효능을 빌려보면 좋겠다 싶었다. 같은 병원에서 새로운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진료실도 넓고 선생님의 취미인듯한 레고 조립품들도 여러 개 있었다. 전에 만났던 선생님보다 연세도 조금 더 있으시고 대화 나누기도 편했다. 약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은 안 해주시는데 나에게 질문하실 때 조금 더 인간미가 있어서 느낌이 전보다 괜찮았다.
솔직하게 요즘에 우울감이 있는데 전에 ADHD약을 먹었을 때 기분이 좀 더 좋았어서 처방받으러 왔다, 부작용이 있어서 끊었었다고 얘기했다. 그러니까 약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콘서타 대신 아토목세틴 18mg을 처방받았다.
아토목세틴은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norepinephrine reuptake inhibitor, NRI)이며, 노르에피네프린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저해하여 뇌에서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켜 치료효과를 나타낸다. 아토목세틴은 비정신자극제(비-중추신경자극제)로서 세로토닌이나 도파민에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도파민성 부작용인 흥분, 중독 등의 부작용이 적다. - 네이버 지식백과
ADHD는 예방하거나 완치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지만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히 치료하면 효과적으로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 증상은 대부분 약물요법으로 조절이 가능하며, 약물 치료제는 크게 정신자극제(중추신경자극제, CNS stimulants)와 비-정신자극제(비-중추신경자극제, non-CNS stimulants)로 나뉜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ADHD 치료제 중 정신자극제는 메틸페니데이트가 있으며, 비-정신자극제는 아토목세틴과 클로니딘이 있다. 약물들마다 효과, 부작용, 주의사항 등이 다르므로 환자 상태를 기반으로 이러한 약물 특성들을 고려하여 치료제를 선택하게 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우울감에 대해서도 왜 우울한 것 같냐고 질문을 하시길래 우선 가장 표면적이고 최근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연애 때문에 우울하다, 불만족감을 느끼는데 헤어질 것을 생각하면 실패자가 된 것 같아서 우울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물어봐서 그 자리에서 생각난 대로 답변한 것이다. 연애를 하면 대체로 그러냐고 물으시길래, 대체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시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헤어짐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부터는 보통 그랬다. 마음에 고민이 많아졌는데도 차일피일 이별을 미루니까 머릿속이 헤어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고 불만족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한 자존감 하락으로 우울했다. 듣더니 일반적인 고민인 것 같다고 하셨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병원이니까 참고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이 들어서 진단받은 것은 아닌데 혼자 책 보고 유튜브보고 연구해 보니까 자폐스펙트럼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추가로 말씀드렸다. 종합검사 상으로는 그렇게 진단할 정도의 소견은 없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서 몇 가지 감각처리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대인관계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니 추가 검사나 치료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고 하셨다.
나는 스스로 확신하지만 일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들을 것으로 예상했던 소견을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약물처방할 때 참고가 될 수도 있으니 일단 말씀드린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난 결국 이별을 했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어느 순간 공허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약간의 무력감과 타협감, 우울감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요청하지는 않았는데 한 달에 2,3일 정도 보통 우울하고 최근에 우울하다는 얘기에 함께 처방해 주셔서 일단 일주일이나 며칠만 복용해보려고 한다. 안정감에 대한 욕구보다 생각-감정-행동이 일치하는 통합된 자아상을 유지해야 하는 욕구가 더 높음에 틀림없다. 안 맞다는 생각 때문에 이별에 대한 생각이 들면 일단 이별을 해야 정신건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다.
ADHD 치료제 아토목세틴을 어젯밤에 처음으로 복용하고 잤다. 자기 전에 복용하라고 한다. 술 마시고 복용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소주 몇 잔을 마시고 들어온 상태에서 어제는 그냥 약 자체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복용을 했다. 부작용인지 잠을 잘 못 잤고 구토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아침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나올 수 있었다. 바로 이런 효과. 아침에 눈뜨기가 수월하고, 침대에서 가뿐히 나올 수 있는 것. 그리고 억지로 아침에 스스로를 북돋지 않아도 눈 뜨자마자부터 활력과 생의 의지가 있는 것, 이것이 내가 원하던 효과였다.
낮동안도 그리 각성효과가 있지는 않고 감정 기복도 별로 없다. 식욕은 평소보다는 줄은 것 같은데 밥이 안 넘어갈 정도는 아니다. 콘서타 용량을 늘렸을 때는 밥이 안 넘어가는 정도였다. 각성된 느낌보다 나른하고 차분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적당히 차분한 느낌이 지속되고 있다. 우울감이나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덜하다. 머리가 엄청 총명한 느낌은 아닌데, 잠을 거의 못 잤으니 두뇌에 미치는 효과는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의욕감이 조금은 고취되었기도 하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일시적인 생존본능에서 오는 의욕 고취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지낼 땐 약 없이도 괜찮았던 것도 같은데, 혹시라도 다시 누군가를 알아간다거나 연애를 하려면 ADHD 약이 필요할 것도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낯선 타인과의 깊은 상호작용을 견뎌내려면 약물의 힘을 조금 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약물이 혼자 지낼 때처럼 좀 더 차분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안정적인 관계 유지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확인해 볼 생각이다.
ADHD 증상, 우울감, 감정기복을 대처하는데, 아토목세틴 계열 약물이나 기타 보조제의 신체 반응에 대해 연재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