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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Aug 06. 2024

가족에게 결혼얘기를 했다고 했다

결혼과 결혼식에 대한 생각

동생에게 나 결혼하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는 친동생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같이 밥을 먹을 정도로 친하다. 동생이 형 결혼하면 뭐 하나 해주겠다고 했다고 했다.


그도 바라는 것이 없고 나 역시 당연히 바라는 것이 없다. 그냥 나중에 우리가 같이 살 집에서 마르코오빠랑 오빠 동생 이렇게 와서 같이 밥 먹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동생이 질문 같은 것도 잘하고 리액션도 잘해주는 편이어서 마르코 형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오빠랑 마르코오빠는 둘 다 말하는 성향인데, 잘 들어주는 성향 있으면 같이 어울리면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동생도 핏줄이니까 같은 ㅇㅇ이씨 패밀리네라고 했다. 그렇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다 가족이었다.


동생하고 친하긴 해도 그래도 가족한테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게가 다른 것 같다고 진짜 우리 결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누군가와 결혼을 생각해 본 것도 처음이고 동생에게 결혼 얘기를 꺼낸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만나서 같이 시간 보낼 때마다 밥먹듯이, 아니 밥 먹는 횟수보다 더 많이 서로 결혼해 달라고, 너랑 결혼할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가족에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무게가 달랐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안 꾸던 꿈을 꾸었다. 꿈에 대학교 동기들부터 시작해서 대학생 막바지에 인턴했던 회사 동기까지 등장했다. 평소에 그들을 생각하고 지내는 것도 아닌데, 문득 과거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꿈에 평소 생각도 많이 안 하던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니까 내가 죽을 때가 되었나 싶었는데, 곧이어 결혼한다는 게 뭔가 더 있음직해져서 그런가 싶었다.


남자친구랑 다음날 아침에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역시 꿈에 평소에 생각 안 하던 사람들이 나왔다고 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결혼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결혼식에 대한 생각이 평소에 생각지 않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나 싶었다.


꿈에 나왔던 사람들이 예전에 결혼식에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 무리의 사람들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은 연락한 지 오래되어 결혼식을 한다고 해도 초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결혼식에 대한 생각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귄 초반에 흘리듯이 남자친구에게 나는 결혼식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알고 보니 남자친구가 더 한국식 결혼식과 결혼식 준비에 들어가는 절차에 거부감이 있었다.


나는 식은 안 해도 촬영 같은 것은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웨딩”이라는 글자를 붙여 호갱이 되는 것에 나 역시 ‘굳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내가 어디 여행 가서 스냅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도 아닌데, 결혼한다고 해서 다를 것은 없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매일 내게 왕비처럼 대해줄 사람을 만나서 살면 되는 것인데, 굳이 하루짜리, 길게 잡아 며칠짜리 공주놀이를 할 필요나 욕구는 조금도 없다는 생각이다.


전에는 결혼식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평균을 벗어나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결혼식을 한다는 생각이 더 대단한 허례허식을 치른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 2명이 함께 살 사람과 함께 살 공간을 마련해 함께 지내겠다는 결심, 그에 더해 평생의 법적인 보호자가 되겠자는 결정에 왜 평소 연락도 잘 하지 않던 사람들과 심지어는 직접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까지 증인이 되어주어야 할까 싶다.




기회가 될 때마다 왜 나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그는 그때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내게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내게는 하고 있는 스스로를 볼 때 그랬다고 한다.


나는 언제 결혼 생각을 했을까 돌아봤다.


 사소한 순간이라면 밤에 같이 동네에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반바지를 입고 가서 오는 길에 다리에 모기가 물려서 간지럽다고 하며 돌아왔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부스 안으로 오라더니 비눗물로 다리를 씻어줄 때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점차 쌓였던 순간들 역시 기억한다. 이 사람은 나의 일부나 어떤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전체를 아무것도 재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을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느꼈던 순간들이 쌓여 확신이 되어갔다.


나는 이만하면 괜찮아서, 또는 어느 한 부분이 특별하게 느껴져서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에도 해봤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온전히 내 전체를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받아본 적이 없다.


나를 사랑하지만 어느 부분은 조금 불편해하고 마음에 걸려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그랬다.


그런데 그는 내 전체를 다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존심 부리지 않고 그 어떤 복잡한 것도 없이 사랑하겠다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들려줄 때부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느껴졌고, 믿었다.


진짜로 한 번도 자존심 부린 적 없었다. 내게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할 때조차 자기 마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내가 그에게 확신이 없고 사랑을 그만큼 표현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분명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줬다.


내가 붙어있다가 떨어져 있으면 트집 잡고 부정적인 이야기 하게 되는 게, 같이 있고 싶은데 떨어져 있으니까 싫은데, 그렇게 말하기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그랬다고 고백했는데 우리 사이에 무슨 자존심이 있냐며 자기가 말해준 내용을 잊었냐고 했다.


나 역시 자존심 부리지 않는 것 역시 부끄럽거나 지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 준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고 그 모습을 꾸밈 있는 모습보다 더 많이 좋아해 준다.


전에는 이해받지 못했던, 고쳐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조차 이 사람 앞에서는 전혀 문제 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잘 맞을 때, ‘아. 잘 맞는 사람도 있는 거였구나. 그동안 만나지 못했을 뿐이구나. ’ 싶었다.


그리고 그의 여러 가지 면 역시 나는 다 품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그가 그런 나를 알아봐 줄 때, 내게서 포근함을 느낄 때 서로가 서로의 사람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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