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삶의 규칙
원래 그렇게 집순이는 아니다. 하지만 주말엔 계획을 세우기도, 나갈 준비를 하기도 귀찮아서 일이 없으면 밖에 잘 안나가거나 오후 늦게나 돼서야 나간다.
막상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밖에 오랫동안 잘 있는다. 약속이 딱히 없어도 공원에서 햇볕을 쬐며 앉아있거나 북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쇼핑몰에서 옷 등을 구경하거나 밖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재밌는 것들이 많다.
6주 전 주말 아침 영어스터디를 시작하고 여행을 갔던 한 주 빼고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원래는 주말 아침 스터디를 하면 좋은 점에 대해 쓰려고 했다. 어떻게든 아침에 준비를 하고 나가니 주말 전체의 시간을 잘 활용하게 된다는 그런 내용. 그리고 아침에 부지런히 준비하고 나와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그런 내용.
주말 오전에 어떤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분명 값진 일이었다. 주말 오전에 시간을 내서 스터디를 참여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런 만큼 인생에 대해 진지하고 열의가 있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어 좋았다. 사람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사람에게 치유받기도 한다. 스터디에 가면 처음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보지만 몇 번 나가면 지난주에 만났던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나에게 익숙한 사람이 주는 의미는 엄청 크다. 규칙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면 그 사람들은 편안하다. 더구나 자기 얘기를 진솔하게 꺼내서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의 스터디이니 더 좋았다.
하지만 매번 고정된 사람이 오지 않고 조금씩 바뀐다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아가는 것도 꽤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호불호나 편불편은 크다. 그리고 호에 속하는 사람일지라도 사람이 보내는 시선과 태도에 예민하다.
내 옷차림에 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는 시선을 어떤 사람이 하루에 몇 번 보냈는지까지 다 외울 수 있다. 나이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면 어떤 고정관념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것이 시선과 언어에서 드러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좀 더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는 경향이 있어 조금 더 불편하다. 물론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스캔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고 그들은 편안하다.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나면 사고방식이 조금이라도 말랑한 사람이라면 대체로 편견을 고수하기보다는 오히려 영감을 받을 것이란 확신은 있다. 나는 타인을 먼저 배제하려고 하지 않고 편견 없이 수용하는 편이다. 내가 타인에게 하듯 타인도 나를 대해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차림새 위아래로 훑기, 발화 내용과 행동거지 하나하나 스캐닝을 통해 특이점이 발견되는 즉시 나를 보는 시선이 변화되는 것, 이 정도는 시간을 가지고 나를 더 다각도로 보여주면 좋아진다. 하지만 이보다 더 불편한 것은 여왕벌 행세다.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되면 감각적으로 너무 불편해서 도저히 주변에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생기면 일단 피하기로 했다.
집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 조금씩 생채기가 생긴다. 작은 생채기도 생기지만 더 큰 영감도 얻고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보다 더 크기에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출근해서 사람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는 평일을 제외하고는 주말 중 하루는 내 마음을 완전히 내가 통제 가능하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집에서 고요하게 보내며 나를 힘들게 하는 시선과 언행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나도 타인에게 어떠한 시선이나 언행으로 마음에 생채기를 주지 않고 청정하게 보내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 하루 그 누구 하고도 대화하지 않고 고요히 하루를 보내니 마음이 깊이 치유된 느낌이 든다. 어딘가로 향하는 동안 대중교통에서라도 안 좋은 시선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것 하나 없는 아주 깨끗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