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연결감(connectedness)에 대한 욕구
어떤 글이든 쓸 수 있지만 어떤 글이나 쓰지는 않는다. 남자를 위한 소개팅 첫 만남 실패하지 않는 법에 대해서 써볼까 싶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나와 강하게 연결된, 진짜 내가 드러나는 글을 먼저 쓰고도 시간과 에너지가 남으면 그런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예민하고 섬세하고 디테일에 강한 여자니까 남자들이 어떻게 하면 첫 만남 자리에서 최소한 마이너스인 선택들은 하지 않을지 잘 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쓴다고 해서 내가 가진 욕구 중 중요한 욕구인 연결감(connectedness)에 대한 욕구 충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나와 강하게 연결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하루라는 시간 동안, 조금 더 길게는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적인 동물로도 살고, 자폐의 끝을 보이는 개체로도 살아야 한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자폐의 끝인 그런 지점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나와, 철저하게 고립된 나, 양끝을 모두 오가야 정신이 아주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건강검진 결과지의 단골로 등장하는 멘트 중에 심장박동을 빨리 뛰게 하는 고강도의 운동을 주 3회 30분 이상 하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 상호 작용도, 철저한 고립과 내면으로의 침전도 고강도로 주 3회 30분 이상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요가에 살짝 중독됐다. 적정선을 찾아나가면서 내 몸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좋다. 필라테스 개인 레슨도 몇 년째 받고 있는데, 필라테스가 악기를 배우는 것 같다면 요가는 내가 좋아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4년 동안 플루트를 배웠다. 악기를 배우듯이 필라테스를 배울 때에도 내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몸의 가동성을 점차 향상시킨다. 클래식 음악 교재의 진도를 나가며 새로운 곡을 하나하나 배워가듯 필라테스에서도 점차 새로운 동작들을 배워나간다. 익숙한 동작은 더 정교하게 만들어나가고, 새로운 동작은 선생님과 교정과 반복을 통해 몸에 익게 만든다.
요가 수업에서는 선생님의 구두 지시를 듣고, 그리고 가끔씩 시연 동작을 보고 동작을 해나가지만 결국에는 내 호흡에 맞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다. 스스로 좋아하는 연주곡들을 계속 연습해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쉬탕가와 빈야사라는 곡을 내가 연주할 수 있는 만큼, 그리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연주한다.
요가를 하는 시간은 나와 강하게 연결되는 시간이다. 주변 사람들의 동작이 아니라 나의 호흡과 나의 동작에 집중해 내 몸의 자극을 느끼고 내 몸의 가동범위를 확인해 보는 시간이다. 사람들과 함께 호흡을 나누지만 말을 나누지는 않는다. 요가 수련에는 묵언이 바탕이 된다. 듣고 집중하고 말은 하지 않고 몸으로 동작만 행한다.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 묵언의 시공간을 사랑한다. 각자 자기만의 산책과 사색을 하는 한적한 공원과 산책로, 각자 독서나 공부에 집중하는 카페, 각자 자신의 수련을 하는 요가 수련실 같은 곳을 사랑한다. 집에서 홀로 완전히 고립되는 것보다 밖에서 자연과 동물, 그리고 고요한 사람들 가운데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각자 책을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좋아하는 이유도 묵언과 대화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더 깊은 대화를 위해 혼자만의 힘으로 책을 읽어내야 하는 묵언의 인고의 시간을 애정한다.
에세이를 쓰는 시간은 나만의 내면세계로 고립되는 시간이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고립과 묵언을 필요로 한다. 나와 강하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잠시 동 시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야 한다. 과거의 어느 지점, 내 기억 속의 어느 지점, 내 머릿속과 마음속의 어느 지점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주변의 소리와 움직임은 단지 배경이 되고 오로지 내 생각과 손끝, 글자만 존재하는 장면만 생생하게 재생되어야 글이 탄생할 수 있다.
요가를 하고 에세이를 쓰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고립과 묵언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가지려고 하는 것을 결국 더 강하게 연결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자아에 더 강하게 연결되고 주변의 아무나와가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와 더 내면을 강하게 연결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내 몸의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고 몸과 마음, 정신이 강하게 연결되기 위해 요가를 하고 나를 제대로 파고들기 위해 에세이를 쓴다. 사람들과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읽고 나누고 싶어서 책과 글을 읽고, 혼자서 나만의 감정과 생각에 몰입하고 싶어서 산책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일들과 요가의 차이점은 요가는 오로지 나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spiritual) 세계와의 연결만을 위한 것이지만 다른 일들은 나 자신과의 연결뿐 아니라 물리적인 세상과의 강한 연결 욕구 때문에도 일시적인 고립을 택한다는 점이다.
나를 발굴해 줄,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동질감을 느껴줄 누군가를 기대하며 글을 쓴다. 쉽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진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고 싶어서 글들을 찾아 읽는다. 산책을 하며 인간관계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끝없이 생각한다. 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어 사랑 노래를 들으면서 걸으며 주문을 건다.
느슨한 연결, 느슨한 대화로는 강한 연결감이라는 욕구 충족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글과 책, 산책, 그리고 연애에 이리도 몰입한다.
내가 택하는 고립과 묵언은 더 강한 연결을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