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과 고민이 많아지는 밤에 대한 단상
2주 정도 아침 요가를 못했고, 기분도 함께 하강 곡선을 그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침요가를 했고 일찍 일어나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부슬부슬 오는 비에 새로 산 명화 우산을 쓰고 회사까지 걸으니 미소 지으며 걷게 되었다. 행복은 아침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는 여러 생각들로 고민하다 지쳐 잠들어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기분이 좋다.
아침햇살도, 오늘처럼 흐린 날의 눈부시지 않은 하늘도, 부슬부슬 오는 비도 다 좋다. 지하철에서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것도 좋고, 6시 반도 안된 시간에 벌써 출구를 향해 올라가는 에스칼레이터가 붐비는 여의도역의 풍경도 여유 있게 느낄 수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에너지가 전해지고 나도 그 속의 한 명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뭐니 뭐니 해도 출근을 위한 옷이 아니라 요가복을 입고 바로 지하철을 탄다는 것이 좋다. 딱 붙는 라텍스 옷 핏이 꽤 좋은 편이다. 군살 하나 없이 완벽하게 날씬하진 않지만 지하철을 타고 요가학원까지 걸어갈 정도의 자신감은 있다. 사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편해서 좋다. 회사에는 입고 가지 못하는 요가복을 입고,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도 회사 방향으로 함께 가고 있다는 약간의 반항정신이 즐겁다. 아침 요가를 갈 때는 전날 출근복을 부직포 가방에 넣어놓는다. 옷을 고를 필요 없이 일어나자마자 편한 옷을 후딱 입고 집을 나서는 마음이 가볍다.
아침 운동을 하지 않을 때는 허겁지겁 출근하며 주식방송부터 챙겨 듣기 시작하는데, 아침 운동을 위해 일찍 나가는 날에는 유튜브에서 명상 폴더에 저장해 놓은 아침명상 영상부터 듣는다. 블로그 시절부터 이웃이던 힐러 혜랑님의 영상을 귀로 듣는다. 아침 명상 영상은 이런 멘트로 끝이 난다. “마음이 빛나면 삶이 빛납니다. 내 안의 별을 밝히세요. ” 이 멘트가 전부터 참 좋았다.
이 영상과 그녀의 목소리도 참 오랜 시간 함께했다. 혼자 살기 전 집에서 출근을 할 때는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 명상 영상을 첫 영상으로 듣곤 했다. 송파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던 시절 동트기 전에 집을 나서면 좋았다. 어둑어둑한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색달랐다. 요샌 어둑어둑한 시간에 집에서 나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만 나와도 하루의 시작이 행복해진다.
아침부터 요가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월수금, 화목에 선생님이 다른데 다 좋으시다. 요가선생님들만의 바이브가 있다. 그 바이브를 너무 좋아한다. 사실 몸과 몸의 연장선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루는 선생님은 웬만하면 다 좋아한다. 좋은 선생님들한테만 정착하기도 하고, 정착하다 보면 정이 쌓이고 그래서 그 선생님들이 나의 힐링템 중 하나이다. 내가 다니는 곳들의 필라테스, 요가, 한의사, 미용사 선생님들이 대표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남자친구나 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가 내 몸의 털끝하나 만지거나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데 선생님들은 괜찮다. 필라테스 선생님이나 요가 선생님이 만지는 것은 힐링이다.
요가 선생님이 월수금, 화목, 아침시간, 점심시간 이렇게 달라서 처음 보는 선생님들에게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선생님에 대한 애정은 요가를 하다가 쓰윽 손으로 동작을 도와주며 세심하게 터치해 줄 때부터 시작된다. 터치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경계심을 해제하고 마음을 연다. 스킨십은 관계의 시작이 맞다. 스킨십을 허용하는 사람은 마음을 연 사람이다.
자주보고 내가 마음을 연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편이다. 표현은 잘 못해도 내 인생에 엄청 중요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운동 선생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마음이 있던 사람이 선생이라는 표현을 써서 정이 확 떨어진 적이 있다. 선생님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데, 님을 빼고 말하는 그 태도에 마음이 차가워졌다.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면 선생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애정과 존경을 담아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뭐랄까 세상을 자기 밑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래서 강사라는 표현도 쓰지 않는다. 스스로의 직업을 지칭할 때는 강사라고 칭할 수 있지만, 제자나 타인이 부를 때는 가르쳐주고 뭔가를 도와주는 사람은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맞다.
요가 선생님과 나마스테로 아침을 함께 열고, 요가 수련을 꾸준히 해온 부지런하고 핏한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이 좋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지는 느낌이다. 요가를 마치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버블티나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활기차게 걸으면 이미 행복한 하루에 필요한 요소는 9시가 되기 전에 다 채운 것이다. 아침에 카페를 가는 이유 중에 하나가 카페에서 일하는 분이 환하게 맞아주는 것이 좋다. 유명한 프랜차이즈는 잘 가지 않는데,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가 좋다.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더라도 열의를 가지고 일하는 곳이 좋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드물게 있는 에너지를 느껴야 한다. 사무실에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열정을 내뿜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출근 전에 밝은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루가 기분이 좋다.
아침은 이렇게 행복이다. 그런데, 밤에는 왠지 모르게 생각이 많아지고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요즘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과 과거에 있었던 일들로 인한 고통의 잔여감 때문에 잠들기가 어려웠다. 고 웨인타이어의 박사님의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책에 인간관계가 고민이라면 그냥 물 흐르듯 놔둬 보라는 내용이 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질서를 통해 다시 정렬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하고, 누군가를 항상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 허락하고 경청하고 관찰하라고 한다. 이 구절을 되새기면서 지내고 있다. 내가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어떤 일을 실행해 옮길 때 더 마음이 안 좋아질 것 같아서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때까지 내버려 두고 있다.
시간이 답을 주겠지 하면서 흐름에 맡겨보려 한다. 섣부른 판단도, 실행도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나 스스로 결정을 하고 답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해 고민해 보고 나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 한편, 인간관계는 내 의지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렵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상대방도 비슷하게 느꼈을 텐데 인생에서 그 느낌에 대한 중요도가 타인과 내가 같을 수가 없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각자의 인생에서는 모두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다. 두 개체가 인생의 타임라인과 특정한 느낌의 가중치가 모두 맞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렵다.
타임라인과 경험치도 다르지만, 에너지 레벨도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소위 하이텐션이라고 불리는 텐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이 말하는 의식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의식의 수준이 맞거나 높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주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그들의 언행과 뿜어내는 바이브를 통해 느끼다 보니 의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주변에 있을 때 피로감을 느낀다. 운동 선생님들과 요가하는 사람들 주변에 있을 때 마음이 좋은 이유도 이 공간에는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도 높은 의식 수준을 지니고 있고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사람들도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아침 바이브를 밤이 주는 바이브보다 훨씬 좋아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행복해진다는 것을 체감한다. 밤에는 밖에 오래 있지 않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절제하고 아침 일찍 하루를 열어야 한다. 아침이 주는 모든 좋은 것들을 누려야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