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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책방 May 01. 2024

뇌종양 수술, 벼랑 끝에 서다.

비탈진 내리막에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건강상의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우선적으로 나의 왼쪽 뇌에 위치하고 있다는 종양을 치료하기로 마음을 먹고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여러 대학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보기 시작했고 뇌종양 환우들이 모인 카페에 가입을 했다. 이제 내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 목록에는 다양한 환우들이 모인 카페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유방암을 겪으면서 환우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가 마냥 유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대학 병원 특성상 진료 시에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볼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치료 예후나 다양한 치료방법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빅 5안에 드는 한 병원에서 진료를 보던 중에 내가 청력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했는데 수술 후 청력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실된다는 것인지, 시간이 지난 후에 소실된 청력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는 경우도 있는지, 청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지. 이렇게 세 번의 질문을 했고 내 질문과 의사의 짧은 대답시간을 다해봐야 3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의사는 “청력얘기는 그만하세요!” 라면서 호통을 쳤다. 청력을 잃게 된다는 청천벽력의 말을 들은 환자의 마음 따윈 안중에도 없는 거만한 태도였다. 나는 총 다섯 군데 병원의 진료를 봤는데 공통된 의견은 이 종양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커진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청력상실, 안면마비, 어지러움, 균형감각상실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종양이 더 이상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감마나이프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후유증으로 청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었다. 청력소실도 그렇지만 여자로서 안면마비라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다섯 군데 병원 중 네 군데 병원은 어차피 청력을 잃게 될 텐데 좀 더 사용하다가 몇 년 뒤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고 그중 한 군데 병원에서는 수술 후에 일시적으로 종양이 부풀어 오르는 과정에서 크기가 커진 종양이 주변의 신경을 누르면서 안면마비나 청력소실이 오게 되는 것인데 종양이 작을 때 수술을 받으면 종양이 붓더라도 그 크기가 많이 크지 않기 때문에 주변 신경에 영향을 덜 미칠 것이며 50%의 확률로 청력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럴듯한 말이었고 실제로 뇌종양 환우들이 모인 카페에서는 최근 그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환자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대체적으로 좋은 후기들이 많았다. 유방암 환우카페를 볼 때와는 다르게 긍정적인 글들이 많았는데 수술 후에도 청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다는 글들도 꽤 있었다. 수술 후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으로 이명이 대표적인데 대부분 경미한 정도였고 극심한 후유증을 겪는 분들은 애초에 종양의 크기가 매우 컸거나 개두술을 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감마나이프 수술은 절개를 하는 수술이 아닌 종양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수술이기 때문에 아주 극심한 후유증은 딱히 없는 듯했고 나와 종양의 크기가 비슷했던 한 명의 환우가 감마나이프 수술 후 극심한 청각과민증과 이명 등의 증상으로 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라고 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글을 반복적으로 올리긴 했지만 그분의 경우는 특이 케이스라고 생각을 하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서둘러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휴직 기간 내에 수술을 하고 완전히 회복을 한 후에 복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술 일정을 서둘러 잡았고 수술 하루 전에 입원을 해서 다시 뇌 mri 검사를 하고 수술에 관한 설명을 들었는데, 처음 진료를 봤을 때와 종양의 크기가 전혀 변함이 없었는데도 의사는 갑자기 청력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30% 정도라고 하며 말을 바꾸었고 2박 3일로 예정되어 있던 입원일자를 3박 4일로 변경을 하자고 했다.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한 상태였고 선생님을 믿고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실 청력소실이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처음에는 청력소실이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지만 한쪽 귀의 청력소실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환우분들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저 안면마비만 없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종양의 위치가 안면신경과는 많이 떨어져 있어서  안면마비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수술 후에 흔히 발생하는 이명에 대해서는 평소에 피곤할 때 들리는 이명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리는 정도겠거니 하는 생각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수술에 들어가면서 다시 한번 수술 후유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청력소실과 이명, 어지러움이나 균형감각 상실 등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후유증은 대체적으로 수술 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나타난다고 했다. 수술은 수월했다. 감마나이프 ‘수술’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사실상 가만히 누워서 방사선을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술’에 가까운 느낌이었고 순조롭게 수술을 마치고 3박 4일간의 입원 생활동안 나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평화롭게 입원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퇴원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불운은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정확히 12일이 지날 무렵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왼쪽 귀에 물이 찬듯한 심한 먹먹함을 느꼈고 그날 나는 청력이 거의 소실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한쪽 귀의 청력소실이 딱히 삶에 큰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청력소실이 매우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병원 진료 후에 들른 약국에서 약사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고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약사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데는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착용이 한몫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문제는 청력소실이 아니었다. 그 후로 며칠 뒤 나타난 이명과 청각과민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청각과민증은 모든 세상의 소리를 증폭시켜서 수돗물 소리나 변기 물 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터져 나갈 정도로 소리가 울려댔고 이명은 머릿속에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집 앞에 마트를 갈 때조차도 도로의 차소리 때문에 양쪽 귀를 다 틀어막고서야 겨우 다녀올 수가 있었고 균형감각이 떨어져서 집안에서 걸어 다닐 때에도 가구 모서리에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특이케이스라 생각했던 그 환자의 경우가 나의 경우가 된 것이었다. 잠깐도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상황. 나는 결국 예정되어 있던 복직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사회생활은 할 수 있을런지 하루하루가 너무 막막하고 두려웠다. 항암제 부작용과 불안장애로 인한 신체증상으로 앉아있기도 버거운 날이 계속되어갔고 시끄러운 세상 소리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불행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이 삶을 이쯤에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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