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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책방 Apr 27. 2024

불안장애

비탈진 내리막에서

존엄사 단체에 가입을 한 이후에도 내 신체증상은 계속되어갔고 온몸에 나타나는 경련증상은 점점 심해져 갔다. 포털사이트에 내 증상에 대해 검색을 해봤더니 루게릭병에 대한 글들이 나왔고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검사를 받아봤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다는 소견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몸에 나타나는 이상증세들은 원인도 모른 채 계속되었고 나는 의사가 할 수 없다면 내가 직접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내 증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내 증상들에 대해 관찰과 기록을 하고 검색을 하던 중에 많은 공황장애 환우들이 나와 동일한 증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공황장애 환우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공황장애 환우들이 겪고 있는 증상은 놀라울 정도로 내 증상과 비슷했다. 경련(진동) 증상으로 루게릭병을 의심하며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들조차 나와 같았다. 공황장애 환우들은 대부분 자율신경계 장애를 겪게 된다고 하는데 그것을 불안장애 또는 공황장애의 ‘신체화 증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공황장애 환우들이 겪고 있는 증상은 평소 내가 겪고 있는 증상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리고 자율신경계 장애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던 중 존스홉킨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였던 지나영 교수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그 영상을 보고 난 후에야 내가 원인을 찾기까지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나영교수님은 에베레스트 등반에도 도전했을 정도로 매우 건강한 분이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걸을 수도 앉아있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온갖 검사를 다 해봤는데 세계 최고의 존스홉킨스 병원의 교수였으니 얼마나 훌륭한 의료진들에게 진료를 받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의 원인을 찾지 못했고 급기야는 의료진들로부터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본인이 15년 경력의 정신과 의사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세계최고 병원의 의사인 본인이 진단을 받기까지 6개월이 걸렸으니 일반인들은 원인도 모른 채 평생을 살게 되는 경우도 많을 거라고 했다. 자율신경계 장애는 맥박, 혈압, 체온, 호흡, 장운동, 호르몬 조절 장애등 다양한 증상이 발생하고 병적인 피로감으로 쉽게 지치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뚜렷한 약도 없고 치료방법이 없어 완치가 어려운 난치병이라고 한다. 지나영 교수님은 자율신경계 장애에 따른 증상을 휴대폰 배터리에 비유했는데 마치 오래된 휴대폰과 같이 충전을 해도 금방 방전이 되어버리고 배터리가 10%밖에 남지 않은 상태처럼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금방 방전이 되어 꺼져버리기 때문에 아예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증상이 심했을 때는 병적인 피로감으로 밥만 먹어도 몇 시간을 누워있어야만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증상 역시 내가 겪고 있는 증상과 완벽히 일치했다. 나 또한 증상이 심한 날은 밥을 먹는 행위만으로도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소비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식사 후 몇 시간을 드러누워 있어야만 했다.      


공황장애 환우들도 수시로 기운이 빠지는 등의 자율신경계 이상 증상을 많이 호소했는데 공황장애 환우들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발작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공황장애 환우들은 심장 두근거림과 함께 호흡이 가빠지고 곧 죽을 것만 같은 증상들이 절정에 달하는 발작 증상이 나타나는 순간들이 있는데 나는 한 번도 발작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공황장애보다 더 넓은 개념인 불안장애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공황장애 관련 서적도 읽고 오랜 시간 내 증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한 끝에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이 불안장애로 인한 자율신경실조증(자율신경장애, 자율신경불균형) 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신경과에서 검사를 해 본 결과 자율신경의 이상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불안장애 진단도 잇따랐다. 하지만 자율신경계 장애는 특별한 약이 없는 상황이었고 자율신경계 장애를 발생시킨 원인으로 추정되는 불안장애를 치료하려면 항우울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항우울제는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복용을 할 수가 없었다. 자율신경장애는 여러 가지 발병원인이 있을 수 있고 지나영 교수님처럼 심리적인 것과 상관없이 발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과도한 스트레스등의 심리적인 원인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30대 중후반 무렵부터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고 암진단 직후에는 심한 정신적 충격과 극심한 불안감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고도 잘 극복해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잠재되어 있던 불안감이 휴직 전 공직생활에서 겪었던 일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발현이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유방암 치료제로 먹고 있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한 갱년기 증상도 자율신경의 불균형을 발생시킨 것에 한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극심한 신체증상을 겪는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상태가 괜찮은 날이면 영어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고 성인미술 학원도 다니며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또한 내가 직접 내 병명과 치료법을 찾아나가는 과정 중에 알게 된 한 제약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을 못 견뎌했고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를 지켜본 친구와 지인들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조금이라도 괜찮은 날이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나를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 턱관절 장애를 심하게 앓았던 친구는 자신은 병이 생긴 후에 한동안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해져서 외출을 아예 하지 않았고 욕창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방안에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훨씬 심각한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나를 보며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하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런 나의 행동들로 인해 요양병원 간호사들과 같은 병실 환자들이 내가 우울증이 아닐 거라고 적극적으로 대변해 주었던 일도 있지 않은가. 이런 나를 지켜보는 지인들의 반응을 보며 이런 내 모습이 나 자신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TV에서 유명한 신경정신의학과 의사가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불안장애 환자들 중에는 무기력증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불안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율신경계 장애를 겪고 계신 지나영 교수님의 강연은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는데 현재 지나영 교수님께서는 조금씩 진료를 보시면서 크리에이터로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자율신경장애는 난치병이기 때문에  병을 이겨낸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난치병이기 때문에 이긴다기보다 같이 살아가야 할 병이라고 말씀하시며 현재도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몇 주, 몇 달씩 아프기도 하고 조금만 무리를 하면 며칠을 누워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지나영 교수님께서 강연에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Everything is happening for me, not to me. 

And i will make lemonade out of these lemons.

(이 모든 어려움도 나를 위해서 일어나고 나는 이 쓴 레몬으로 레몬에이드를 만들 것이다.)       

   

강연의 끝나갈 무렵 지나영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체력 배터리가 10%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내 인생은 정말 소중하다. 이 귀한 인생을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내가 정말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내 삶은 정말 짧다. 끝날 것 같지 않은 터널 속에서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한걸음 내디뎌보는 용기를 내본다면 쓰디쓴 고생 끝에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레몬에이드는 지금 목 타는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율신경계 장애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하지만,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이상 증상의 원인을 알게 된 후 조금은 맘이 후련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이후에도 나는 지나영 교수님의 강연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나는 삶이 던져준 이 레몬으로 어떻게 레몬에이드를 만들 것인지 하나씩 차근차근 노력을 해보고자 마음을 먹었고 이 깊은 터널 속에서 나가기 위해 또 한 번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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