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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해랑 Nov 08. 2023

힘든 건 그냥 힘든 거야

말해줘서 고마워

“등산 가자”

꿀 같은 토요일 아침 늦잠 자고 싶은 남편과 아이를 깨워 재촉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가을이 얼마나 이쁜지를 마흔이 넘은 이제야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물들어 가는 울긋불긋한 나뭇잎들도 파란 하늘도 상쾌한 공기도 요즘 날씨하나로 그저 기분이 좋은 하루들이다.

숨차는 게 싫어서 운동도 그저 걷거나 스트레칭이 전부였는데 등산은 오죽하랴 숨차게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고 나에겐 굳이 할 일 없는 종목이었다. 가을 날씨 좋다고 등산하기 딱 좋은 계절이라는 친언니의 꼬임에 우리 가족은 최근 토함산, 화왕산을 정복했더랬다. 다리가 날 끌고 가는지 산의 기운이 날 끌어당기는지도 모르게 등반을 하는데 아들은 그야말로 고역이 따로 없는 표정이다.

“등산하면 근력도 생기고 유산소도 되는 복합 운동이래. 정상 가면 성취감은 말로 못해. 가보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몸이 천근만근이다.

세 걸음 가고 쉬고 하는 아들을 어르고 달래고 그렇게 두 번의 힘든 산을 정복했었다.

이번엔 인근의 어르신들도 매일 오른다는 등산이라 하기도 애매한 야산을 한번 갈 참이었다. 단지 단풍이 너무 이뻐서 그러겠노라 결심해 버렸다. 운동 좋아하는 남편이야 신나게 가방 챙기면서 나서지만 아들은 일주일 동안 학교 학원 다니느라 힘들어서 집에 누워 핸드폰게임이나 실컷 하고 싶을 텐데 그래도 터덜터덜 따라나선다.

몸풀기 쭉쭉 늘려주고 가볍게 시작한다. 저번에 했던 산들에 비함 산책 수준의 높이와 경사였다. 그래도 산은 산인 것을 오르면서 깨달았다. 숨이 역시나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지난번 산행 때는 나 역시 힘들었기에 아들과 속도를 맞추며 기다려주고 격려해 주며 같이 올라갔다. 정상에서 아들이 “엄마 아니었음 나 못 했을 텐데 기다려주고 옆에 있어줘서 정상 왔어. 이 멤버 리멤버” 이야기해 줬다. 그 후로 우린 뭐만 하면 “이 멤버 리멤버”를 외치며 회식자리 마냥 흥을 돋웠다.

아들이 자꾸 쳐지고 인상도 구겨지고 있다. ‘지난번 산에 비함 힘든 수준도 아닌데 왜 저래 못 올라와. 오기 싫어서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들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아들에게 쏘아버렸다.

“뭘 그렇게 힘들다고 인상을 구기면서 와. 화왕산이 몇 배는 더 힘든데도 잘했잖아. 산에 올 때마다 이럴 거야!!” 화살은 아들에게 가서 깊숙이 박혔다.

“그렇게 싫은 티 낼 거면 그냥 내려가. 정상은 무슨 정상이야” 두 번째 화살도 쏘아버렸다.

남편이 아들과 보조 맞춰 데리고 오르고 난 화가 나서 폭풍 등반을 해버려서 우여곡절 끝에 산을 오르고 내려왔다. 여전히 난 ‘그거 좀 못 참고 왜 그럴까’ 마음속의 화가 가라앉지를 않았다. 어찌어찌 운동은 하고 왔으니 된 걸로 하고 마무리 됐다.

그러고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자려는 아들 곁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아들이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지난번 등산 때 나 진짜 힘들었어. 근데 엄마는 자꾸 화왕산땐 잘했으면서 이러고 비교를 하니 더 화가 났어”

“아 과거의 너랑 비교하는 것도 기분이 안 좋았어? 앞으론 비교하는 거 조심할게”

“비교도 싫지만 엄마, 사람이 총에 맞으면 아프지? 칼에 찔려도 아프지? 그냥 맞아도 아프지? 다 그냥 아픈 건 아픈 거야.”

“응? ” 난 극 T형 엄마인지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잠시 멈칫했다.

“엄마 그러니까 나는 토함산도 힘들었고 화왕산도 힘들었어 토요일 그 산도 나에겐 그냥 힘든 산이였어. “

“힘들긴 하지. 더 힘든 산도 해냈는데 엄마는 좀 나을 거라 생각했어. 넌 힘든데 화내서 미안해”

힘든 건 그냥 힘든 거야


맞다. 맞는 말이다. 손가락이 베여도 아픈 거고 넘어져도 아픈 거다. 그냥 아픈 거였다. 아들은 그냥 힘들다는 거였는데 나는 그것도 못 참는 나약한 아이로 생각해 버렸다.

힘들다고 말하면 힘들구나 같이 오르자 하면 됐을 일을 수많은 화살을 만들어 아들 마음에 꽂아버렸다. 그래도 마음을 표현해 주니 그것 또한 너무 감사하다. 사춘기 나이라 대화도 어렵다는데 아들은 엄마가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비유까지 해서 마음을 한껏 내보인다. 말해줘서 고맙다고 품에 꽉 차지 않는 아이를 온마음 다해 안아주고 한마디 더 붙인다.

“성격 좋은 우리 원이가 그래도 말해주고 다 털어버렸네 앞으로도 그래 줘”.

“알겠어. 나도 사춘기라 감정이 널뛰는 것 같아. 그럴 땐 말할게”


아이들이 당신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그 아이들이 항상 당신을 보고 있음을 걱정하라. -로버트 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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