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이래도 되나요
“ 엄마 난 오늘 지금이 제일 행복해”
‘지금이라 하면 학교를 마치고 와서 한 손엔 핸드폰, 한 손엔 소시지바를 들고 있는 지금을 말하는 건가 ’ 그래 누가 봐도 지금 모습은 참 행복해 보인다.
중1 남자아이. 사춘기의 길목인 나이인데 이 아이는 사춘기가 세상 마냥 행복하게 오는 건지 매일이 의문이다. 사실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가보면
태어날 때부터 기질 자체가 그랬다. 어떤 상황이든 본인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고 걱정이나 고민은 날려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유아기 때도 여간해서는 울지 않는다.
넘어져도 울지 않고, 혼나도 울지 않았다. 단 본인이 억울할 땐 여지없이 울어버린다. 아무리 혼날 일이라도 납득이 되면 ‘오케이 혼내도 괜춘. 내가 잘못한 거임‘이런 마인드라 혼내는 엄마의 전투력을 꺾어버린다. 혼자 난리부르스 치며 화내고 혼내고 나면 ’ 나 때문에 엄마가 더 힘들었네 ‘ 이래버리니 이건 뭐 내가 사춘기 애가 된 것 같다.
‘“지금 행복한 거 너무 좋지 하지만 사람이 또 미래도 생각하고 딱 오늘 하루만 하루살이처럼 살 순 없잖니” 너무 하루하루 태평한 모습에 한소리 얹어본다.
“ 엄마 하루에 하나씩만 좋은 일이 있어도 매일이 행복하게 보낼 수 있어. 그래서 난 지금이 제일 중요하고 행복한 거야” 맞는 말이다. 백번 맞다. 근데 뭔가 찝찝한 기분.
하기 싫어도 해야 될 공부와 숙제들이 있는데 이건 한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안 하지 않는 단말이지.
이런 생각 때문인지 저녁에 시킨 치킨으로도 행복하다 말하고 해야 할 숙제 5개 중 1개가 없어지고 4개를 해야 되는데도 행복하다 한다. 심지어는 야구를 볼 때는 뼛속까지 파란피인 엄마는 올 시즌 속 터질 일이 수두룩인데 아들은 매번 즐겁단다. “이기는 팀 응원할 거야 이기는 팀이 내 팀” 이래버리니 야구 보는 동안 늘 행복하다. 늘 이기니까 아니 늘 이기는 팀을 응원하니까 말이다. 누가 시켜도 못 할 것 같은데 머릿속에 자동으로 행복해지게 바꿔주는 회로가 있는 건 아닌가 궁금해진다.
물론 매일이 마냥 해피하기만 하진 않다. 이 아이한테 가장 화가 나는 일은 억울한 일, 공정하지 않는 것이다. 게임하다가도 스킬이 안 먹혀서 또는 오류로 진다거나 하면 화를 낸다. 본인의 회로로도 이건 안 되는 모양이다.
단순하지만 걱정이 좀 많은 엄마, 매사 진중하고 생각이 많은 과묵한 아빠 사이에서 아들은 제3의 인격체로 태어난 것 같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애기 때부터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질문에 우리 아이는 항상 “ 내가 나 좋아하는 거 1등이고 그다음 엄마아빠 같이 2등이야” 이랬다. 처음 들을땐 많이 당황스러웠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지만 나라면 절대 생각하지 못한 답이니 말이다. 수많은 책에서나 나 자신을 사랑해야 된다지만 남의 눈 의식하고 살아온 나한테는 쉽게 적용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옷을 입어도 아들한테 “ 엄마 이거 입으니까 어때? 좀 별로인가?‘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 엄마가 그 옷 이뻐서 입은 거지? 그럼 된 거야. 나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는 신경 안 써도 돼. 입고 싶으면 입으면 돼” 이 말이 뭐라고 난 왜 마음속 한편이 뜨거운지.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신의 마음이 덜 다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면서도 감사하다.
혼을 많이 냈던 어느 날 자기 전에 물었다. 엄마가 화나서 한말들 때문에 마음 다치지 않았냐고 했더니 아들이 그런다.
“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낸 거야. 엄마 말이 다 맞아서 나 괜찮아. 근데 혼낼 때 엄마 눈이 촉촉해서 엄마가 우는 것만 같았어. 엄마 마음도 많이 아프고 속 많이 상했지?” 이러면서 안아준다. ‘ 내가 아직 배울게 많은 엄마구나.’ 지금 행복한 건 당연하고 미래도 생각하며 살았음 하는 나의 욕심을 살며시 접어본다.
‘그래 당장 내일도 알 수 없는데 지금 행복하면 되지’ 이러다 행복회로 오류로 진정한 사춘기가 올지도 모르지만 일단 오늘 지금 행복해 보련다.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행복을 즐겨야 할 장소는 여기다. -로버트 인젠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