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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Jul 29. 2024

비 오는 길

[걷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걸었다


우산 위 떨어지는 빗소리가 화음이 되어

정겨운 코러스를 만든


때론 첨벙첨벙

때론 폴짝


물에 젖은 신발에 발이 무거워져

앞으로 가기 힘겹기도 하지만


우산 속 나만의 작은 공간이

비밀의 화원이 되어

비의 감성과 함께 젖는다



나는 원래 어릴 때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비에 옷이 젖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다. 불편하게 움직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우산을 챙겨 드는 것도 귀찮지 않던가.


그런데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늦게 학교를 나서서 거리가 한산했다. 우산을 쓰고

학교길을 걸어 집으로 갔다.


심심해서였을까 평소와 다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빗속에서 홀로 부르는 노래가 나쁘지 않았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방음막이 되어 나의 목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빗방울이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으면 한곡의 합주곡을 듣는 것처럼 새롭게 다가왔다.


잠시 후, 갑자기 비가 더 많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꼭 쥐어도 비가 온몸으로 들어찼다. 한참 동안 비를 맞지 않으려 노력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우산을 접었다.  


비에 옷이 젖자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날,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 비가 내리니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점점 거세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놀이를 온 아이처럼 마냥 신나서 폭우를 맞으며 걸어오는 그 길이 너무 재밌었다.


집에 도착해서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방 안에서 비가 내리는 창가를 바라봤다.


어린 마음에도 왠지 비 오는 날의 처음 느끼는 그 감성이 좋았다. 온전히 비의 감성에 젖어 비를 바라보며 느끼는 그 느낌.


그날부터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다.


여름날에는 가끔 비를 맞고 집에 걸어오는 걸 즐겼고,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비 오는 날, 창가에 내리는 비를 조용히 바라보며 비의 감성에 빠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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