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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쉼 Sep 24. 2024

가게 아저씨

첫 번째 인물

“어서 오세요.”


선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중년은 훨씬 넘은 듯한 남자다.


작고 둥근 달걀형 얼굴에 까무잡잡한 피부, 크고 부리부리한 눈에 짙은 쌍꺼풀, 크고 높디높은 코. 작고 얇은 입술을 가지고 있으며 눈가에 주름을 가득 내며 크게 소리 내서 웃을 땐 순진함이 가득하다. 작은 키와 다소 마른 듯 왜소한 몸을 가지고 있다.     


동네 어귀 바로 앞에서 작은 슈퍼를 하고 있는 가게 아저씨다.  

    

이 가게로 말할 것 같으면, 평수는 그리 크지는 않다. 그러나 다 허물어져 갈 것 같은 옛날 건물이 20년 이상을 그 자리에서 동네를 지키고 있는 동네 터줏대감이다.      


이 동네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동네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꼭 지나야 한다.      


가게 안에는 다양한 물품들이 팔리고 있다. 면도칼, 비누 등의 세면도구뿐만 아니라 바구니, 주전자, 프라이팬 등 생활용품도 작게나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종류의 몇 안 되는 간식과 군것질거리, 아이스크림, 그리고 음료수들도 저마다의 모습으로 잘 진열되어 있다. 두부, 콩나물처럼 매일 쓰일 것 같은 음식재료는 가게 앞에서 손님들의 이목을 끈다.      


가게 아저씨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항상 미소를 지으며 손님을 맞이하고, 늘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연다.

    

사실 처음부터 이 분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원래 이 분도 나름 이름 있는 대학을 나올 만큼 공부를 꽤 잘했다. 아저씨가 젊었을 당시에는 나름 각광받았다는 전자과가 있는 잘 알려진 공업대학에서 공부했었다. 그때 당시,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공부 잘하는 동네의 젊은 학생이었다. 대학교에서 조차 장학금을 탈만큼 두각을 나타냈었고, 졸업하자마자 장학금을 준 잘 나가는 공기업에 입사하여 동네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때 당시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첫 직장이 자신의 마지막 직장이 될 거라 여기며, 젊어서부터 직장생활에 열심히 일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실력을 검증받아, 그 당시에는 쉽지 않은 해외연수와 출장을 미국, 일본, 유럽 등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그땐, 해외로 나가기 위해 여권을 발부받으려면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그런 특별한 절차가 없이 불가한 일이 아저씨에게 주어질 만큼 나름 실력도 있었다.     


그랬던 아저씨였지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여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연애도 제대로 해 보지 못했다. 그러다 당시에는 많이 늦은 나이인 30살의 노총각이 되어서야, 회사 상사 중 한 분이 소개해준 선 자리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7살 연하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두 아들을 낳았다.     


잘 나가는 공기업에 입사했고 그때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회사 월급이 꽤 높았다. 하지만 이젠, 이 동네를 떠나 장남과 함께 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신 늙은 부모님의 생활비를 따로 마련해 드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 둘째 아들이었다. 또한, 이제 두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다.


아저씨가 어느 날은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묻는다.     


“나 회사에서 나와서, 의사고시를 준비해 볼까 봐?”     


아저씨의 말에 놀라서 쳐다보던 아내에게 아저씨가 담담하게 말한다.     


“부모님 생활비도 그렇고. 애들 키우려면 앞으로 돈이 더 많이 들 텐데. 지금 회사 월급으로는 힘들 것 같아서... 요즘 의사가 잘 나가서, 돈도 많이 번다고 하더라고.”     


쌍둥이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무게감과 같이 살지는 않지만 시부모님께 드려야 할 생활비로 쪼들리는 상황에서, 그래도 나름 풍요로운 집안에서 시집 온 아저씨의 아내는 이미 현실적이 되어 있었다.      


"의사고시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사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생활비는 어쩌려고요?"


결국 아저씨는 회사 생활을 계속하기로 결정한다.     


앞만 보고 열심히 일했던 아저씨였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좋다 보니, 남들 다하는 아부와 아첨이 어려웠고, 그래서 번번이 진급을 하지 못하고 같은 회사 동기보다 승진이 늦어졌다. 그런 상황을 감각적으로 알게 된 아저씨의 아내는 불평 없이 아저씨와 잘 지내며 묵묵히 아저씨의 직장생활을 조용히 보필했다.     


다행히도 아이들 공부는 회사에서 많이 대줘서 크게 돈을 내야 할 상황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도 아저씨는 젊은 시절을 바쳐 일하여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던 자신의 직장에 감사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 경제가 어려워지며, 큰 기업들 마저 부도가 난다는 IMF가 왔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종용받은 아저씨는 결국, 회사에서 50세의 나이에 퇴직금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자신의 청춘과 열정을 모두 바친 회사에서 내쳐지자, 다른 퇴직자들처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가 결국, 자신의 퇴직금을 모아 이 작은 가게를 열게 된 것이다.      


장사를 잘하는 수완이 좋은 아저씨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실수를 연발하고, 좋은 물건, 필요한 물건을 잘 몰라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자, 못 미더워하던 동네 사람들도, 성실히 묵묵히 일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점차 아저씨에게 마음을 열고 이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젠, 20년의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동네의 오래된 단골가게로 자리 잡았다.


결국, 한 자리에서 열심히, 성실히 일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급변해 가는 동네에서도 단골손님들을 꾸준히 이어가게 했고, 크고 화려한 건물에 자리 잡은 대형마트들이 속속 생겨나는 틈에도, 그래도 장사가 되는 단골 가게로 동네의 중심이 된 것이다.

    

오늘도 아저씨는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깨끗하게 가게를 치우고, 물건들을 진열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손님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인사를 한다. 늘 반복되는 일과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문을 닫는다.      


때때로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 가게가 끝날 때쯤 모습을 드러내면, 아저씨는 그들이 물건을 다 살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기다려 준다.


어쩌면 정장을 잘 차려입고, 옆에 서류가방을 들며, 늦게 퇴근하는 동네사람들이 집에 가기 전에, 가게로 들어와 물건을 고르며, 하루의 피로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하루를 마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하루도 빠짐없이 365일을 지켜나가는 가게 속 아저씨의 모습이 동네 앞 어귀, 가게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동네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며, 오늘도 어김없이 동네의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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