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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Mar 07. 2019

산 책과 걷는 시간

오늘의 포춘쿠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도통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써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사이 서른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아득해진 날들의 빈칸을 유의미하게 채워보고자, 어쩌면 마지막 취미기 될 책 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을 걸으며 말했습니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라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사고 일주일 동안 낯선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저야 대부분 서울 한복판을 걷겠지만, 언젠가 런던을 산책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김금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다시 또 공항에 홀로 남겨졌다. 세차게 흔들던 오른손을 가만히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익숙한 안녕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의 막차 시간을 확인한 뒤 사람들과 가능한 한 넓은 간격을 두고 앉을 만한 곳을 찾았다. 일요일 저녁의 공항은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 돌아오는 사람과 혹은 돌아가는 사람들로 예외 없이 북적였는데도 애인의 뒷모습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이 넓은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무도 내가 어디로 떠나는지, 혹은 돌아가는지, 곧 함께 떠나거나 아니면 나에게로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갑자기 무언가 잃어버려 이러지도 저러기도 못한 채 발이 묶여버린 건지 궁금해 할 리 없었으므로 나는 ‘심리적 혼자’에 점점 더 가까워져가는 채로 공항을 서성거렸다.

  마침내 자리를 잡고 그간 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은 책을 꺼내자 모서리를 접어둔 페이지가 가장 먼저 펼쳐졌다. 서문과 목차를 지나 첫 단편이 시작되기 전, 한 줄의 문장이 마치 포춘쿠키의 메시지처럼 얇게 끼어 있었다.

  ‘그건 어떤 이별에 대한 뒤늦은 실감이자 그리움 같은 것이었고 동시에 미안함이기도 했다.’

  나는 이 문장이 책에 실린 열아홉 편의 짧은 소설 중 한 편에 수록된 말인지 아니면 그저 작가가 곧 책을 읽어나갈 독자에게 반드시 일러두고 싶은 감정이었던 건지 헷갈렸다.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책이었는데도 좀처럼 특정 단편과의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했다. 페이지 번호도 적혀 있지 않은 멀끔한 여백 위의 문장은 소설집과 전혀 무관한 존재로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진심으로 믿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부디 믿고 싶은 말이 나오길 기대하며 조심스레 부숴본 포춘쿠키를 마주한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에겐 대개 모호한 메시지가 배달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확실한 행운이나 차라리 불행을 기대하지 행복도 절망도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깨달음 같은 것은 원하지 않는다.


떠나기 전, 애인은 캐리어를 현관문에 세워두고 언제나처럼 집을 구석구석 둘러보며 인사했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선 두 개의 베개와 거실의 카펫과 자신이 뽑은 인형들과 한 계절 내내 제 소지품이 어지럽게 놓여있던 책상과 느리게 안녕했다. 그럴 때면 나는 1분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와 물티슈로 책상을 닦고 싶은 조바심에 마음이 달았다. 그러나 일단 공항에 남겨져버리면 그가 돌아갈 날만을 셈하며 계획했던 몇몇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날 오후, 이 겨울의 마지막 점심을 함께 먹으며 애인은 말했다. “너는 정말 내가 빨리 돌아가기만을 바라는구나.” 나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는 대답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던 것처럼 덧붙였다. “조금만 참아. 그럼 더 안 참아도 되는 날들만 남을 테니까.”


게이트 앞 펜스에 몸을 기대고 조금씩 멀어지는 애인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또 한 계절이 끝나가고 있음을 체감하는 의식과도 같다. 옆모습은 빠르게 사라지고 이내 새까만 뒷모습만 남은 그에게 카톡으로 ‘뒤돌아 봐’라고 보내는 스스로가 가소롭지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게 전부다. 한 걸음 떼기가 무섭게 자꾸만 돌아보라고 닦달하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내 나쁘다가 마지막에만 착한 사람이 되려하는 내가 우스울까 아니면 불쌍할까, 혹시 후련하거나 고소한 마음도 섞여 있을까. 정작 그는 캐리어를 부치고도 백팩과 크로스백을 메는 것도 모자라 쇼핑백까지 짊어진 제 짐이 버겁다는 생각뿐이었을 텐데. 나는 그가 생각하지 않았을 것까지 지레 짐작하느라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러 챙겨온 소설집은 헤어진 연인의 조우를 그리는 이야기로 시작될 터였다. 익숙한 첫 페이지를 몇 줄 읽지도 못하고 덮었다.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쳐다보다 잊고 있던 당연한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무엇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한다는 건, 자연히 그립고 미안한 마음을 불러내는 일이겠구나. 때마침 애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연착이 될까봐 걱정 돼.’

  막차까지는 아직 한참이었고,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할 시간을 번 것 같았다.



*이 글은 작가 프로젝트 [an Editorial] 2월 마지막 주에 실린 원고입니다. 2019년 1월부터 2월까지 메일 발송을 통해 진행되었던 해당 프로젝트는 현재 마감되었으며, 제 브런치를 통해서 매주 도서 리뷰 형태로 게시될 예정입니다. (2019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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