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의미
내가 생각하는 나의 첫 번째 책은
캥거루와 사람이 복싱을 하는 사진이 있는
과학책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또 보고 했던 걸 기억한다.
어릴 적 우리 집엔 책이 많지 없었다.
책을 살 형편도, 책장을 둘 공간도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책이 많은 친구 집에 가면 그렇게 좋았다.
놀다가도 틈만 나면 한 권씩 꺼내 읽던
그 맛이 있었다.
이후 대형서점을 처음 알게 된 날.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 한 권 한 권에서
뿜어져 나오는 잉크 향기,
각양각색의 표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
그곳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놀이공원이었다.
소설 속 빨간 머리 앤이 집 앞 숲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듯
난 서점에서 잠시나마
다른 세상 안 다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의 부족한 내 환경이나 일상이
책 앞에 오면 더 이상 부족하지 않았다.
그 안의 수많은 단어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풍요로움을 선물했다.
그 풍요로움이 한 번씩 위축되는 나를
때론 위로하고 때론 힘 있게 잡아주었다.
지금도 책은
나에게 가장 확실한 기쁨이다.
내 오감을 자극하고,
때로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오랜 친구.
삶에는 이런 친구가 필요하다.
힘겨움에 지쳐 있거나,
모든 일에 무감각해져 바짝 말라갈 때
나를 깨울 수 있는,
소소해 보이지만 강한 힘을 가진 친구.
그 오랜 친구가 나를 다시 일어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