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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의 오랜 친구

친구의 의미

by 에밀리아

내가 생각하는 나의 첫 번째 책은

캥거루와 사람이 복싱을 하는 사진이 있는

과학책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또 보고 했던 걸 기억한다.

어릴 적 우리 집엔 책이 많지 없었다.

책을 살 형편도, 책장을 둘 공간도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책이 많은 친구 집에 가면 그렇게 좋았다.

놀다가도 틈만 나면 한 권씩 꺼내 읽던

그 맛이 있었다.


이후 대형서점을 처음 알게 된 날.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 한 권 한 권에서

뿜어져 나오는 잉크 향기,

각양각색의 표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

그곳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놀이공원이었다.

소설 속 빨간 머리 앤이 집 앞 숲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듯

난 서점에서 잠시나마

다른 세상 안 다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의 부족한 내 환경이나 일상이

책 앞에 오면 더 이상 부족하지 않았다.


그 안의 수많은 단어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풍요로움을 선물했다.

그 풍요로움이 한 번씩 위축되는 나를

때론 위로하고 때론 힘 있게 잡아주었다.

지금도 책은

나에게 가장 확실한 기쁨이다.

내 오감을 자극하고,

때로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오랜 친구.

삶에는 이런 친구가 필요하다.

힘겨움에 지쳐 있거나,

모든 일에 무감각해져 바짝 말라갈 때

나를 깨울 수 있는,

소소해 보이지만 강한 힘을 가진 친구.


그 오랜 친구가 나를 다시 일어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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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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