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낸 시간
예전에 아이 친구 엄마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중 누군가가 말했다.
"우린 이제 누구 엄마 말고,
서로 이름으로 불러요."
그 말, 나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게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라
불리는 게 싫지 않았다.
그 이름 안에는
내가 살아낸 시간이 있었고,
내가 지나온 길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조차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엄마라는 말은,
그 아이를 품고 키운 내 시간이고
누구의 딸이라는 말은,
가족 속에서 나를 지켜낸 시간이며
누구의 아내라는 말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내며 배워온
관계의 기록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내 이름은 나를 단언하는
명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경험하고, 변화하는
동사였으면 좋겠다.
정지된 정체성이 아니라,
살아 있는 ‘흐름’ 그 자체로 불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름 대신,
‘살아내는 중’이라는 태도로
묵묵히 나아가고 싶다.
이름보다
존재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연재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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