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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Mar 13. 2023

아빠

엄마는 자기 얘기 쓰지 말라 하셨다. 성인의 의사 존중한다. 아빠는 글 쓰는 거에 대해서 얘기한 적 없으니 써야지.


아빠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이렇다 할 사회적 큰 업적은 없지만 이렇다 할 큰 사고도 없었다.

외모는 굵직굵직한 미남형 얼굴은 아니지만 곱다. 꽃미남 스타일. 옷 사이즈는 항상 변함없이 바지 32. 수십 년 동안 체형이 변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다. 아빠 체형을 닮은 것 같아 감사하다(엄마 체형은 비밀로 할게. 엄마 미안.)


아빠와의 첫 기억은 택시 안이다. 엄마랑 싸우고 우린 쫓겨났었나 보다. 다 꼴 보기 싫어 나가 정도로 짐작한다.(엄마 얘기 하지 말랬는데 미안.) 왜 싸웠는지 알 수 없다. 아빠는 엄마 욕을 하지 않았다. 아빠와 함께 집 앞에 세워둔 택시 안에서 한참을 멀뚱히 있었다.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자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항상 그랬다. 어릴 적 뭐가 먹고 싶다 하면 지금 가게 다 문 닫았다며 시선을 돌렸다. 엄마가 뭐 먹고 싶다 하면 무조건 사러 나가신다. 엄마를 사랑하나 보다.

항상 집에 오실 때 강아지 간식은 꼭 사 오셨다. 나는 확실히 강아지 보다 서열이 아래다. 아빠의 우선순위를 굳이 따지자면 엄마, 강아지, 동생, 나. 요즘에는 키우던 강아지들이 먼저 떠나서 강아지 자리를 손주들이 차지했다. 


아빠는 용건이 없는 한 절대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요즘엔 자꾸 전화를 먼저 건다. 막둥이가 혀 짧은 소리로 할비 바보. 메롱 소리가 재미있나 보다. 손주들과 잘 논다. 철이 덜 들어 애들이랑 눈높이가 맞아서 그렇다는 소리가 있다. 아빠는 항상 아이들을 좋아했다. 애들도 아빠를 항상 좋아했다. 아빠를 싫어하는 애들은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아빠랑 놀았던 기억이 많다. 바다에서 발을 비벼 조개를 잡았다. 강에서 물고기도 잡았다. 집에서 가까웠던 경주의 모든 유적지도 종종 아빠랑 다녔다. 이렇게 보니 택시 기사아이들과 놀아 줄 시간이 많은 직업이다.


택시의 장점이 또 있다. 아빠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데리러 오시고 데려다주셨다. 어딜 가던지 데리러 오셨기에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다 같이 조금 멀리 있는 바닷가(그래봤자 30분)에 1박을 하러 갔다. 아빠는 데리러 오셨다. 굳이. 좁은 시내에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를 아빠의 레이다망을 항상 기억해야 했다. 


하루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우디 노동자 이야기를 사위에게는 술술 해주셨다.(안 물어봐서 얘기 안 해준 건가.) 거기에서도 운전을 하셨다 했다. 도로라고는 없는 사막에 단지 면허증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운전을 했다고 한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랐고, 아빠가 하는 이야기 중 가장 긴 이야기라 또 한 번 놀랐다. 아빠는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확실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행운이 있다니. 택시기사는 아빠의 천직이다.


평소 말이 없는 아빠는 영화를 좋아한다. 일단 앉아서 TV 리모컨을 들었다 하면 무조건 영화채널로 직행이다. 채널을 돌리다 보는 영화, 솔직히 무슨 이야기 인지 몰라서 재미없던데 개의치 않고 본다. 

요즘은 영화에서 드라마로 취향이 바뀌었다. 일일드라마 마니아가 되셨다. 본방사수는 기본이다. 지난 이야기와 등장인물 소개까지 어주고 스토리 전개까지 설명해 준다. 이 시간만은 꼭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고 모든 사람의 의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남자의 갱년기는 이런 건가. 요즘은 드라마 볼 때 가끔 운다는 엄마의 얘기가 있다.


아빠는 안구건조증이 있다. 눈물은 두 번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할머니 장례식. 또 한 번은 신부 입장을 앞두고 문 뒤에서 눈물을 훔치는 아빠를 보았다. 그날은 강아지  서열 정도로 잠깐 올려주신 것 같다. 결혼식 오열의 하이라이트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데 부녀는 같이 울었다. 엄마는 내 등을 토닥이며 귓가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만 울라며 속삭였다.(엄마 또 미안.)



오늘은 아빠의 생일이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를 아버지라 쓸까 백번 고민하고, 존댓말로 고칠까 백번을 고민했다. 아빠라고 부르는 게 아직까지 좋은 철없는 딸이다. 역시 식상하지만 마무리는 사랑한다가 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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