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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ㅋㅋㅋ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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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Apr 05. 2023

이제 그만 헤어지자.

인터넷 쇼핑에 재주가 없다.

가격 비교를 잘 못한다. 물건이 많으면 못 고른다. 이리보고 저리 보다 결국 장바구니에 못 넣고, 사야지 사야지 하다 까먹는다. 돈 굳었다.


암만 인터넷 쇼핑을 못 한다 하더라도 급할 때는 식재료를 종종 주문한다.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고 정신을 차린 어느 날, 다음 날 반찬거리를 걱정하며 새벽배송을 하려 마음먹었다.

미니 새송이가 보인다. 가끔 아이들에게 삶은 메추리알에 버섯을 넣고 간장에 조려주면 그래도 먹어는 준다. 이게 좋겠다며 장바구니에 얼른 주워 담고, 까먹기 전에 결제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 새벽, 빠르게 집으로 도착한 물건들에 흐뭇해하며 주섬주섬 냉장고로 챙겨 넣기 시작했다.





이게 웬일인가. 커다란 파란색 비닐봉지가 하나 있다. 내가 이런 걸 언제 시킨 거지. 장바구니 클릭을 잘못한 건가. 주문 내역에 정확히 찍혀있다.     


미니 새송이 2Kg.    

  

하하하. 식당인 건가.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파란 봉지 가득 들어있는 버섯을 끌어안고 너를 끝까지 남기지 않고 사랑해 주겠다 다짐했다.    

            

파란 봉지 가득한 미니 새송이

오늘부터 미니 새송이 축제다. 뭘 해 먹어야 할까.

바로 생각이 난 건, 미니 새송이 볶음과 불고기에 미니 새송이 넣기.

요리 실력을 믿지 못하기에 레시피부터 검색했다.      

미니 새송이 볶음부터 시작해 볼까. 

파란 봉투를 열었더니, 화가 난다. 미니가 되기엔 웃자라 커다란 새송이가 되기 직전인 아이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충 볶기만 하려 했는데, 칼로 자르고 찢었더니 시간이 제법 들어간다.

프라이팬을 달궈서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볶았다. 거기에 새송이를 넣어 휙휙 볶는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버섯의 향긋함이 화를 누그러뜨려 주고 있었다. 간장, 설탕, 참기름 넣고 살짝 조렸더니 완성이다. 쉬워서 놀라고 하나 맛보았더니 맛있어서 놀랐다. 미니 새송이 2Kg을 다 먹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꿈틀댔다.     

      

자, 이제 불고기다. 아이 하굣길에 소고기 1Kg을 샀다. 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거기에 미니 새송이를 대량 투하했다. 이것은 고기 반 버섯 반, 그 유명한 버섯 불고기인가. 이 정도면 미니 새송이를 빠른 시일 내에 다 먹을 수 있겠다는 긍정적 신호가 머리를 관통했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저녁 식사를 차렸다.

허탈하다.

아이들은 이게 뭐냐며 버섯을 입에도 안 댄다. 엄마가 한 건 다 맛없다며 최악의 멘트도 날려준다. 남편도 맛있다고는 하지만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 걸 똑똑히 봤다.

평소 같으면 괜찮았을 아이들의 장난이 비수가 되어 눈물 꼭지를 콕 눌렀다. 괜히 장바구니에 대용량 버섯을 넣어버린 손가락이 미웠다. 하기 싫은 요리를 열심히 했던 열정에 화가 났다. 상처받은 마음도 천대받은 요리도 안쓰러워 혼자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미니 새송이가 자꾸 쳐다본다. 진한 고동색 눈동자가 애처롭다. 오늘은 또 뭘 해야 하나. 버섯을 꺼내며 레시피를 검색해 본다. 만만하게 볶아본다.           


‘저번에는 간장을 넣었으니 오늘은 간장은 넣지 않고 볶아보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괜한 기대를 하며 버섯을 열심히 또 볶았다.

하하하.

아이들은 버섯을 좋아하는데, 왜 내가 만든 버섯 요리는 싫어하는 걸까. 버섯볶음 속 양파만 먹는다.

먹어보니 괜찮은데 나를 놀리는 걸까. 버섯에 벌써 질린 걸까. 아직도 남아있는 냉장고 속 파란 봉투가 동동 떠다니며 조롱한다. 오기가 생겨 버섯볶음을 남김없이 싹싹 해치웠다.      

          

@photo by pixabay



대망의 미니 새송이 요리 연속 3일째가 되던 날. 재워뒀던 불고기에 버섯을 추가했다. 온갖 요리에 넣었음에도 남아있는 버섯 한 줌은 요리하느라 애쓴 마음을 달래는 라면 속에 듬뿍 넣었다. 파란색 빈 봉투를 탈탈 털어내니 속이 다 시원하다.          

라면 물이 끓어오르고 면발과 함께 동동 떠다니는 버섯을 보니 뿌듯했다. 대용량에 겁먹고 냉장고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버려질까 걱정했었다. 형편없는 실력의 요리지만 최선을 다한 예쁨 마음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니 새송이와 헤어질 생각에 식욕이 한껏 차올랐다. 버섯의 아련한 여운을 느끼며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젓가락질을 했다.        

   

지금 우리는 아름답게 헤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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