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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Sep 12. 2023

드래곤 날개 달다.

얼핏 보이던 꽃망울에 대한 기대감이 흥분으로 고조되던 어느 날이었다.  초록색 안에서 수줍은 노란색이 보인다. 노란색의 파도가 번졌다.

드래곤 꽃이다.  


멜람포디움은 꽃봉오리가 커지며 피어나는 꽃들과는 다르게 서서히 꽃잎들이 하나, 둘 촘촘히 생겨났다.


해바라기처럼 노란 얼굴이 웃었다. 꽃잎이 하나 생겨 날 때마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아이들과 호들갑을 떨었다.   


물을 줄 때마다 꽃잎이 도미노처럼 켜켜이 쌓여갔다. 톡 하고 건드리면 금세 더 커질 것 같은 드래곤의 얼굴. 귀엽다.


며칠이 지나자 또 한송이가 피어오른다. 얼굴을 마주 댄 두 꽃이 쌍둥이 같다.  

이름이 드래곤이라 그런가. 꽃머리를 달고 잎사귀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이 곧 날아갈 것 같다. 승천할 날이 멀지 않았다.    



드래곤 1호가 드디어 꽃이 피었습니다.



오래도록 꽃을 보고 싶은 욕심에 아침 인사로 안부를 물어본다. 밤새 목말랐을 초록과 노랑들에게 물샤워를 시켜줬다.


처음 그로로팟 키트를 받고 물조리개에 왜 입구가 두 개일까 궁금했었다. 페트병 물조리개로 꽃은 물샤워를 시켜주고, 흙에는 좁은 입구로 물을 듬뿍 뿌려준다. 꽃이 피자 비로소 물을 주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물조리개 입구가 두 개인 이유를 이제야 깨닫다니. 다 이유가 있구나.   


드래곤 2에게도 다가가 물을 준다. 꽃이 핀 친구를 따라가려는지 요즘 부쩍 키가 커졌다. 죽을 뻔한 그날의 아찔한 기억을 반성하며 물 주기에 열심이다.


드래곤 2는 분갈이도 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쑥갓 씨앗을 심었던 화분을 재활용했다. 새싹이(쑥갓)는 쑥쑥 자라지 못하고 얼마 전 말라버렸다. 때마침 화분이 작아 보이던 드래곤을 옮겨줬다.  


고사리 손 도우미들은 분갈이 이후 이름 때문에 난리다. 새싹이 화분에 심었으니 새싹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와 원래대로 드래곤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첫째가 화분은 원래 자기 것이니 새싹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에 결국, 드래곤은 새싹이가 되었다. 개명 신청 완료.  



새싹이가 된 드래곤 2



(구)새싹이(쑥갓)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까. 새롭게 태어난 새싹이는 쑥쑥 자라서 꽃이 피겠지.  

그로로팟으로 매일이 새롭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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