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중요한 말이 무얼까 생각해 보면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이 세 가지 말이 아닐까. 미안해로 시작하는 말은 자신을 낮추어 굽히고 들어가니 상대방도 한번 쓱 보는듯하다. 세상에서 진짜 미안할 때 사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종종 분쟁의 회피적 성격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남발하기도 한다.
요즘엔 분쟁 방지책으로 신랑에게 보통 써먹는다. 혼자만 바쁜 아침 그에게 호흡을 가다듬고 살짝 말을 건넨다. 미안한 데를 꼭 붙여서 한번 말을 해본다.
미안한데 이것 좀 옮겨줄래? 미안한데 3호 좀 봐줄래? 미안한데 나 어디 좀 다녀올게.
별게 다 미안하다. 좀 거북할 수도 있다. 뭐 이런 사소한 걸로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보통 사소한 일에서 오해와 시기와 질투 등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태어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건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닌듯하다. 눈 딱 감고 깔아주면 긍정적인 말로 되돌아오는 사소한 말. 그래서 사소한 것들은 웬만한 건 이 미안한데 수법을 주로 이용한다. 그다음엔 물론 고맙다 화답한다.
습관처럼 내뱉는 미안해는 가끔 부작용이 있다. 전화 올 일이 잘 없는 전화기에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를 얼른 받았다. 02-6338-**** 유선전화 혹시 모를 급한 일이 누군가에게 생겼나 싶어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어본다. 여보세요. 낯선 남성이 우물우물 이야기한다. 보이스피싱인가.
"OO 책임자님 이 시죠?" "누구라고요?" "OO회사 책임자님 아니신가요?"
"죄송합니... 아... 아닙니다."
왜 죄송한 거지. 잘못 걸려온 전화 한 그 사람이 미안해도 미안했을 텐데.
옆에 있던 신랑이 웃고 있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 죄송하다는 거였나. 습관처럼 내뱉는 죄송합니다는 가끔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튀어나온다. 그런들 어떤가. 내가 잘못한 일이 없었음이 다행이고, 웃을 일 별로 없는 불경기에 신랑 한번 웃게 해 줬으니 좋을 일 아닌가. 잘못 튀어나온 미안해도 인생에 도움은 된다.
순간의 선택이 모여 인생이 된다. 선택의 순간들을 모아두면 그게 삶이고 인생이 된다.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게 바로 삶의 질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