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20살 새내기의 첫 자취방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벨을 눌러보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 살고 있겠지. 괜히 누굴까 궁금하다.
입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어느 겨울날, 엄마와 나 그리고 서울 사는 막내 고모와 함께 열심히 집을 구하러 다녔다. 전봇대에 붙은 월세, 자취방 종이를 열심히 찾아 전화를 걸고 일일이 찾아다녔다. 좀 괜찮으면 돈이 모자라고, 돈이 맞는다 싶으면 처음으로 혼자 살 시골 상경 여대생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골목 안 후미진 곳. 마음에 드는 집은 언젠가는 짜잔 나타난다는 두 분의 이야기에 걷고 또 걸었다. 춥고 배고픈 밤이 되어버린 그 시간, 이제 마지막 한 군데만 발품을 팔아보기로 했다.
항상 주인공은 제일 나중에 등장하는 법.
드디어 찾아낸 첫 자취방. 주인 할머니가 1층에 살고, 학교 정문 바로 앞 골목 초입. 3층에 베란다도 있고, 방도 원룸 치고는 널찍해서 여동생이 올라올 때 둘이서 지낼만할 정도는 돼 보인다. 어른들은 바로 이거라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화장실 문, 방문이 두 개다. 방이 너무 커서 혼자 살기 부담스러운 원룸을 벽 하나로만 갈라 투룸을 놓은 것. 화장실은 같이 써야 하고 벽은 아무래도 허술해 방음이 잘 안 될 것이다. 고민도 잠시 옆방은 치대 인턴이라 집에서 잠만 잔다며, 여자 혼자 불안한데 더 잘 됐지 않냐며 엄마와 고모는 여기가 딱이라며 서로 맞장구를 친다. 방이 코딱지 만하던, 화장실을 같이 쓰던, 학교에서 멀던 별로 관심이 없었다. 대학 새내기 머릿속엔 그저 처음이라는 설렘과 혼자 산다는 약간의 해방감이 뒤섞여 묘한 흥분을 자아내고 있었다.
드디어 자취방으로 입성. 처음으로 혼자 사는 딸에게 헤어짐의 인사를 건네던부모님은 약간의 걱정을 안고 집으로 내려가셨다.
이제는 정말 혼자구나.
하얀 벽지와 형광등만 바라보며 어색한 첫 경험을 훑었다. 실감이 나지 않아 대학 가면 화장품은 발라야겠지 않냐며 사주신 엄마의 선물 기초 3종 세트도 포장을 뜯어 서랍장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괜히 어색해서 초록색 낡은 싱크대를 열어 몇 개 없는 그릇 개수를 세어본다. 냉장고를 열고는 집에서 챙겨 온 반찬들로 가득한 집밥의 온기도 확인해 본다. 어색한 공기가 온몸을 감쌀 때쯤, 혼자라는 쓸쓸함이 밀려올까 봐 얼른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어색한 하루가 지나자 자취생의 하루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합판 하나로 세워진 벽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방음이 걱정됐지만 옆방 언니는 조용한 성격이었고, 공부하느라 바쁜지 거의 집에 없었다. 화장실 타이밍만 맞추면 웬만해선 마주치지도 않았다. 밖으로 쏘다니기 바쁜 새내기 역시 집에 있을 틈이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