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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Feb 02. 2023

중년의 사랑


     중년이 되면 나이만큼 넓어지고 깊어질 거라고 막연히 상상해왔다. 하지만 막상 반백 년 넘게 살아가다 보면 관계에도 일에도 삶 자체에도 지치고 지치는 때에 이른다. 경험치가 쌓이는 만큼 넓어지기는커녕 만사 새로울 게 없어 심드렁해진다. 몸은 또 어떤가. 갑자기 마음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조금만 써도 마음과 달리 쉽게 피로하다. 수십 해를 기를 쓰고 달려 왔는데 겨우 이거야? 겨우 이거라니, 문득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 날이 억울해진다.


     중년의 이 억울함은 사실 마음에서 사랑이 사라진 탓이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데간데없다. 관계나 일은 물론이고, 애지중지하던 자식이나 취미에 대해서마저 무한 시큰둥하다. 마음이 부유하니 현실은 질척대고 미래는 유약해진다. 깊고 넓은 마음은 커녕 좁고 삐딱해진다. 사랑이라는 윤활유가 고갈된 메마른 마음에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세상 누구보다 내가 안쓰럽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나만은 알고 있다며 스스로 한없이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고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그렇다. 나만 남았다. 나에겐 바로 내가 있다. 마음에 사랑이 넘쳐 어디로든 끝없이 퍼 올릴 수 있었던 시절에는 이토록 오롯이 나이진 않았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새도 없었다. 모두가 떠나고 모든 게 다 끝난 듯 허망하고 억울한 마음을 뚫고 문득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해일처럼 밀려든다.


     하지만 새로이 솟구치는 자아는 이기와는 다른 방향이어야 한다. 주변환경이나 주변인들이 아닌 나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존재감. 이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나일 수 있는 실로 엄청난 기회이다.


     반짝반짝했던 젊은 날처럼 아무 노력 없이도 주어졌던 사랑이 그리운가. 물론 그렇다. 공짜니까. 하지만 어떤 의미로 그건 내가 아니었다. 쏟아지던 관심과 사랑에 부응하는 나였을 뿐이다. 이제 아무도 날 이유 없이 봐주지 않는다. 저들이 나에 대해 한정한 수많은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그저 나다. 자유롭지 않은가 말이다.


     사람의 깊이는 나이가 결정짓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개인의 노력이 결정짓는다. 나만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메마르거나 삐딱해지지 않도록 나를 다독여 일으켜 매일 물을 주고 따뜻하게 보둠어 가만히 지켜봐주자.


     이런 게 진정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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