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by 홍탁

주말에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멍해질 때가 있다. 이때 멍해지는 건 흔히 '멍때리기 대회'에서 하는 그 멍때림이 아니다. 그 멍때림 나도 간절히 원하는 바이다. "아무것도 관심이 없어. 책은 왜 읽으라는 거야?" 중3 남자아이가 비뚤어질 테다 하는 눈빛으로 아빠를 흘깃 흘깃 쳐다보며 툭 던지는 말들. 이런 말의 조각들은 아빠 가슴에 퍽 퍽 와서 박힌다. 사교육의 나라인 한국을 욕하며, 결국 사교육을 시키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좀 더 발전적인 교육을 도모하려는 가련한 몸짓을, 무참히 짓밟는 한마디. 자, 일단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평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멍때리는 것이다.


아이는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먼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MMORPG는 별로 안 좋아해서 축구, 슛팅 게임을 주로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갤럭시탭을 침대에 켜두고 두 가지를 병행하는 모습도 자주 본다. 그러고 나서 학원 숙제를 하고 학원에 갔다 온다. 주말에는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책을 한 장이라도 읽을까? 모바일이나 태블릿을 켜는 목적은 오로지 게임과 유튜브이다. 내 아이만 이럴까? 전자기기를 잠시 꺼두지 않는다면 사고하는 힘이 생길까? 주말에 아이들과 있으면 그런 고민들이 나를 흔들어댄다. 아빠가 돼서 뭐하는 거냐고!


사실 뚜렷한 해결방안이 없다. 아이들이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배우는 지식은 대부분 문제 풀기에 능숙해지는 역량에 관련되어 있다. 중간고사 기간에 잠시 아이와 시험공부를 한 적이 있다. 아이는 문제를 훑고 선지를 가려내는 일명 찍기에 벌써 익숙해져 있었다. 수학 문제 중에 조금 긴 지문이 나오는 문항이 있었는데 아이는 당황했다고 한다. 시험 결과를 다 떠나서 아이가 자신이 사는 환경을 두고 '이걸 내가 왜 하는 거지? 이걸 내가 견뎌야 하나? 견뎌야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길은 있을까?' 같은 고민의 시간은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그냥 이대로 살아야지, 하는 체념의 표정이 더 무서웠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아이게게 장황하게 늘어놓았고 나는 20분 독서 아니 10분 독서를 제안했다. 아이의 시큰둥한 반응을 볼 때마다 나의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기분이 상했다. 씨알도 안 먹힌다는 이게 이걸 두고 하는 말인듯 싶었다. 싸늘한 침묵이 이어졌다. "아빠, 아는데 잘 안 돼." 떨리는 목소리로 침묵을 깬 아이의 한마디. 꽁 했던 가슴이 그제야 풀린다. 내 어머니의 잔소리. 평화로운 분위기에 있다가도 어머니의 잔소리는 반항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는 내용을 왜 그렇게 길게 이야기하시는지. 나이 오십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도. 내 아이도 그런 거겠지.


조금 있다 아이 방에 들어갔다. "아빠, 나 아빠가 준 책 읽어봤어." 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이는 등을 둥그렇게 말고는 책상에 앉아 있었다. 구부정했다. 중간고사 끝나고 키가 더 큰 모양이다. 나는 아이의 그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이들과의 10분 독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험난한 과정에 초대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빠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