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1. 나에게 불안은 너무 익숙해서
1-4. 나를 지키는 루틴, 불안과 공존하는 법
나는 꽤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침엔 운동을 하고, 출근해 하루를 일한 뒤, 퇴근 후에는 그림을 그린다. 매일매일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지만, 그 속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은 따로 있다. 바로, 나만의 루틴이다.
몸이 무너지면 하루가 무너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나의 몸과 마음 상태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나를 다독인다.
카페인은 어느새 금지품목이 되었다. 커피, 초콜릿, 말차...
이전엔 위로였던 것들이 이제는 불면을 부르는 자극이 되어버렸다. 잠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이런 음식들을 멀리한다. 정말 마시고 싶을 땐 조심스럽게 디카페인을 고른다. 하나를 절제할 때마다, 나는 나를 돌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양치만 하고 집 앞 헬스장으로 달려간다.
가까운 거리지만 달리며 몸을 데운다. 이른바 웜업(Warm up). 그리고 계획한 운동에 집중한다.
헬스장은 6시에 문을 여는데 10분 전부터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연세 지긋한 노부부, 다양한 연령의 직장인들... 그들을 보며 이들과 같은 시간에 운동하는 나를 가끔은 칭찬해주기도 한다.
아침 운동은 나를 다시 찾아가는 시간이다. 예전엔 무게를 늘리며 강도 높은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생존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과한 무게로 몇 번의 부상을 겪은 후, 운동도 다정하게 바뀌었다. 매일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무리하지 않기로. 피곤하면 계획보다 조금 못할 수도 있고, 이제는 헬스장에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안다.
아침은 언제나 같다. 카이막과 사과잼을 바른 유기농 호밀빵 한 조각. 집 앞 독일빵집에서 사는 그 단정한 빵 한 조각이 하루를 평온하게 여는 문이 된다.
출근 후에는 정시 퇴근을 목표로 바쁘게 일한다. 퇴근 후엔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점심에 미팅이 없으면 간단히 베이글을 먹으며 시간을 아끼고, 화실에서는 온전히 그림에 집중한다.
저녁은 견과류와 단백질 셰이크.
그림 그리는 시간엔 배부름보다는 집중이 더 중요하다. 허기를 감수하면서도 루틴을 지키는 이유다.
이제는 모임이 줄고, 술자리도 멀어졌다. 한때는 그 시간들이 위안이었다면, 지금은 평온한 내일이 더 소중해졌다. 술의 여파로 흐릿한 하루를 시작하느니, 조금 외롭더라도 다음 날을 선명하게 살아내고 싶다. 그래서 하루를 설계하고 반복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런 삶을 너무 조이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루틴은 통제가 아니라 응원이라는 걸.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강박이 아니라, '오늘도 잘 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만든 길이다.
내 하루의 루틴은 나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내게 보내는 다정한 격려다. 지치지 않게, 무너지지 않게. 낮에 잘 먹고, 몸을 움직이고, 적절히 쉬며 에너지를 모은다. 그 에너지는 퇴근 후의 나에게 전달된다. 나는 그 힘으로 그림을 그리고, 꿈을 그리고, 나를 그린다.
물론, 이렇게 루틴을 지키는 삶 속에서도 불안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숨이 갑자기 턱 막히는 순간도 있고, 위가 뒤틀리는 통증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려오는 이명의 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증상들이 예전처럼 나를 겁에 질리게 하지는 않는다.
'또 불안이 왔구나. 아마 요 며칠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불안이 오면 하루의 리듬을 조금 더 천천히 가져간다.
물을 자주 마시고, 식사에 신경 쓰고, 하루치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그 증상들은 조용히 물러가곤 한다.
불안은 이제 관리 가능한 신호가 되고 있다. 이게 내가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다. 지우거나 몰아내려 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고, 조심스럽게 다독이는 일.
불안은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할 적이 아니라, 조금만 신경 쓰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불안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어느 날은 조용히, 어느 날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숨이 막히고, 속이 뒤틀리고, 갑자기 모든 게 두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을 두려움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전의 나는 불안을 쫓아내려 애썼다. 고쳐야 할 무언가로, 떨쳐내야 할 감정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불안은 그저 나의 일부이고, 나를 지키기 위해 몸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래서 나는 불안을 없애는 대신,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불안은 여전히 나를 흔들지만,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렇게 나는 불안과 공존하며, 나만의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불안이 있어도, 불안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나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