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1. 나에게 불안은 너무 익숙해서
1-5. 체력은 나의 방어기제
며칠째 밤을 설쳤다.
비까지 오는 날씨에 몸은 무겁고 약간의 두통이 느껴진다.
비도 오고, 만사 귀찮은 이런 날엔 ‘오늘만 쉬자’는 핑계가 너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런 날일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억지로 우산을 챙겨 헬스장으로 향했다.
비가 오는 궂은날인데도 불구하고 헬스장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백스쾃부터 시작했다.
어깨에 바벨을 올리는 순간, 몸이 반응한다.
무게감이 등 전체로 퍼지며 등을 곧게 세운다.
첫 번째 반복을 내려갔다가 다시 일어날 때, 다리 근육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는 감각이 뇌로 전달된다.
‘괜찮아, 오늘도 버틸 수 있어’
두 번째, 세 번째 반복을 하며 호흡을 고르다 보면 점점 더 내 안의 소음이 줄어든다.
복잡한 생각도, 불안한 감정도, 일에서 받은 상처도그 순간만큼은 무게 아래 눌리며 사라진다.
운동 중간에 문득 계산을 시작했다.
오늘 내가 들었던 무게는 어느 정도였을까?
• 백스쾃 50kg × 12회 × 3세트 = 1,800kg
• 밀리터리 프레스 25kg × 10회 × 3세트 = 750kg
• 덤벨 숄더 프레스 9kg × 15회 × 3세트 = 405kg
• 사이드 밴드 16kg × 20회 × 3세트 = 960kg
총합: 무려 3,915kg — 거의 4톤 가까이 되는 무게였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 멈춰 섰다.
계산기를 들여다보며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4톤.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스르르 올라왔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내 어깨가, 팔이, 다리가 들었던 무게만큼 나는 오늘을 잘 버텼다고.
세상에 외치지 않아도,
‘나는 오늘 무너지지 않았다’는 감각.
그건 아주 조용한 자존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단단한 무게였다.
내가 운동을 시작한 건 불안 때문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흔들리는 마음, 숨이 가빠지던 밤, 이명과 위장장애, 끝이 보이지 않던 고통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움직이는 것’이었다.
처음엔 체력 관리가 목적이었다.
그러다 점점 운동이 ‘불안을 다루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잠잠해졌고, 땀을 흘리는 동안엔 숨이 덜 막혔다.
운동을 좀 더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급하는 생활체육지도사 2급(보디빌딩) 자격증까지 따냈다. 증명서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나의 싸움과 버팀과 꾸준함이 들어 있었다.
이건 나를 위한 자격증이자, 내 불안을 길들이기 위한 하나의 언어였다.
지금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여전히 벽처럼 나를 막고, 어떤 날은 조용히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하지만 오늘, 나는 4톤의 무게를 들었다. 그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운동을 할 것이다.
나를 더 단단히 세우기 위해, 그리고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어쩌면 불안은,
나를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다시 일어설 이유를 주기 위해 찾아온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