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1. 나에게 불안은 너무 익숙해서
1-6. "약을 먹는 나도 괜찮습니다"
나는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
그 사실을 고백하는 일이, 예전에는 쉽지 않았다. 처음 병원에 발을 들였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이러다 정신병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과도한 상상이었다.
잠을 못 자는 것도 괴로운데,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약을 먹어야 하나’,
‘도대체 어떻게 살겠다고 이렇게까지 버티는 걸까’라는 자괴감이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고, 이게 과연 맞는 방법인가 늘 확신이 없었다.
정신건강의학과도 여러 곳을 전전했다. 어떤 병원은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은 채, 그저 약부터 처방했다. 내가 "잠을 못 잔다"라고 하면 수면제를 주고, "그래도 힘들다"라고 하면 약의 종류와 개수만 바꿨다. 나는 상담을 원했지만, 의사는 늘 바빠 보였고, 내 마음은 진료실 문 밖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병원을 만났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부터 내게 약을 권하지 않았다. 불면은 ‘결과’ 일뿐이고, 그 뿌리에는 내재된 불안이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짚어주셨다. 여러 번의 상담을 거쳐 받은 건 불안을 완화하는 아주 약한 용량의 약이었고, 놀랍게도 그날부터 나는 조금씩 잠을 잘 수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싸워야 했던 건 ‘불면’이 아니라 그 불면을 만든 내 안의 불안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상담 때마다 증상이 개선되기 위한 조건 세 가지를 이야기하신다.
‘적절한 약, 충분한 상담, 그리고 환자 개인의 삶에 대한 책임과 노력’
하지만 나와 상담할 때마다 늘 난처해하신다.
“삶 속에서 늘 전속력으로 달리기만 하는 분을 어떻게 쉬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 말에 나는 그냥 웃는다.
지금 내가 복용 중인 약은 조울증약, 항불안제, 항우울제, 공황장애 약까지 네 가지다.
약 덕분인지 체력이 조금은 올라오고, 무엇보다도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불면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내게는 가장 큰 변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먹으며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는 말한다. 정신과 약은 오래 먹으면 안 된다고, 끊기 어렵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말들에 휘둘리지 않는다. 당뇨약이나 고혈압약처럼,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평생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약. 그런 약이 지금의 내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지키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이젠 더 이상 나를 깎아내리는 증거가 아니라,
스스로를 살피고 지켜내는 내 의지의 표현이 되었다.
가장 최근 상담에서 나는 말했다.
“선생님, 저... 이렇게 사는 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내심 “그렇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조금 힘들 뿐이지, 그 자체가 비정상은 아닙니다.
윤지선씨는 지금, 충분히 괜찮아요. 그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 말이 참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약을 먹는 나, 흔들리는 나, 감정에 휘둘리는 나도 결국은 정상이라는 경계 안에 머무를 수 있다는 말.
그 말은 오랜 자책의 고리를 끊어주는 첫 번째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불안을 없애려 싸우기보다 그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