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로 들어가라

by 책한민국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은 ‘지옥의 구멍’이란 뜻을 가진 길이 190km, 깊이 872미터의 홀로흐 동굴(스위스)입니다. 지옥의 구멍이라니, 이름 참 으스스하죠. 그런데 세상에는 더 길고 깊은 동굴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70억 개가 넘는 이 동굴들은 특이하게도 모두 주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동굴 앞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하느라 바빠서 탐사는커녕 안쪽을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어쩌다 동굴에서 괴이한 소음, 견디기 힘든 악취,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나 독성 물질이 올라올 때만 주인은 잠깐 동굴 안쪽을 두리번거립니다. 코와 귀를 틀어막거나 두툼한 옷을 껴입고 초강력 방향제도 뿌려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동굴은 너무 깊고 어두워서 뭐가 뭔지 도통 알기가 어렵습니다. 내 동굴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데 주인은 자신이 평생 동굴 언저리에 있었으니 동굴에 대해서 알 건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매점이 망하거나 강도의 습격으로 가게가 엉망이 되면 동굴 속으로 몇 발짝 들어가 보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귀찮음 때문에 깊이 들어가진 못합니다.


때로 운이 좋은 주인은 뜻밖에 지척의 샘물이나 금맥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악취, 소음, 독물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깊이 탐험하는 주인들은 악취의 원인인 썩은 동물 사체를 발견해 깨끗이 치우거나 독충들을 박멸해 괴로움에서 해방되기도 하지요.


반면 어떤 주인은 두통과 불면의 밤을 선사하는 온갖 악취와 소음, 독극물이 자신의 동굴 속에서 올라온다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이웃 동굴에서 그것을 뿜어내는 양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웃 동굴을 찾아가 따지며 분노하거나, 원망하며 괴로워하지요. 동굴을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쩌다 그런 좋지 않은 동굴이 내 동굴 옆에 있게 됐는지 평생 한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동굴과 동굴 사이는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옆 동굴의 악취 따위가 내게 두통을 줄 수 없다는 걸 그들은 도통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모두 내 동굴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 동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걸 모릅니다.


오래전 현자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동굴관리법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1. 불을 켠다. 2. 탐험한다. 3. 청소하고 개발한다. 3단계로 이루어진 이 간단한 정리법은 이미 세상에 모두 알려졌지만 실제로 따라 하는 동굴 주인은 거의 없습니다. 매점 운영에 바쁜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내 동굴 안에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것들은 모두 이웃 동굴에서 온다고 믿습니다.


이런 생각은 아주 편리합니다. 뭘 하든 다른 주인들이 해야 하고 나는 피해자로서 지적만 해주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굴 주인이 간과하는 게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동굴 안에서 악취가 난다면 원인은 동굴 내부에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동굴과 주인이 한 몸일 지도 모릅니다. 손이 코에 주먹을 날려 쌍코피를 터뜨리거나 손가락이 눈을 찌르려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한 몸이니까요. 마찬가지로 동굴은 주인을 공격하거나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버려진 동굴은 주인이 들어와 청소되고 개발되기를 원할지도 모르지요. 동굴은 모든 주인이 저마다 다르게 아름다운 동굴의 신비를 음미하고 동화하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인류 앞에 놓인 미지의 탐험 대상은 세 곳입니다. 바다, 우주, 그리고 우리 각자의 동굴, 즉 마음입니다. 주인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는 가장 쉽고 빠르고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동굴을 탐험하는 것입니다. 동굴은 주인만 들어갈 수 있어서 탐험은 다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각자의 마음과 삶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하루 한 번 자신의 동굴을 바라보고 한 발짝씩 들어가 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곳에 해법과 치료제와 보물이 있습니다. 안심하세요. 나와 동굴은 하나입니다. 해치지 않습니다. 동굴은 당신이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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